검색결과
-
제1회 나요당농요상 수상, (사)국가무형문화재 통명농요보존회 안성배 전승교육사지난 12일에 나요당 농요상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제1회나요당농요상'은 경북 예천 (사)국가무형문화재 통명농요보존회 안성배(安成培) 전승교육사가 수상했다. 안성배(1973년 통명 출생)씨는 2020년부터 통명농요보존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농요의 현장과 이론을 겸비하고 있다. 2016년 중앙대학교대학원 국악교육학 석사과정 졸업, 2019년 안동대 민속학과 박사과정(지도교수 한양명)을 수료했다. 안성배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선배님 어른들 제치고 이런 큰상을 주셔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큰 책임을 맡기신 것 같다. 농요의 현장과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매진해왔다. 더욱 통명농요를 보존 및 계승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어 "준비하고 있는 안동대 박사학위 주제도 무형유산 '통명농요' 전승활성화에 관한 것이라고 전했다. "10여년 동안 통명농요 전승계보 및 회원 등 보존회 전승활동 아카이브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다행히 150여 분 회원들의 자취를 발굴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잠시 단절된 민속예술이 명백을 이어오다가, 마을제에서 활발하게 계승되었던 민속예술이나 민속연희가 이제는 마을 인구가 줄어들면서 걱정이 앞선다. 광산이 산재해 있는 있는 주변 지역과 다르게 예천은 농업이 주를 이루면서 하늘을 섬기며 마을과 전통을 지켜왔다. 그래서 통명농요 '아부레이수나' 같이 아름다운 노래가 전해져 오는 것 같다."고 덧부쳤다. 예천 순흥 안씨 집성촌에서 자라난 안성배씨는 자연스럽게 통명농요를 들으면서 자라났다. 아버지, 작은아버지, 당숙어른, 사장어른 등이 모두 통명농요보존회 단원이다. 1991년부터 대학 동아리에서 풍물활동을 하다가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통명농요와 통명농악를 접하고, 아버지가 작고후 보존회에 들어와서 자리를 메꾸웠다. 통명농악 상쇠어른(윤석원, 1937-2008)이 작고 후, 2009년 제50회 한국민속예술축제 경북대표(상쇠)로 출전, 현재 통명농악 상쇠를 맡고 있다. 마을 동아리 단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농요란 농민들이 힘들고 바쁜 일손으로부터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 들노래 또는 농사짓기소리라고도 한다. 예천 통명농요는 경북 예천군 예천읍 통명리의 농민들이 매년 모심기를 할 때 힘겨운 노동으로 인한 고달픔을 해소하기 위하여 부르는 농요로 조선 중기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심기할 때 부르는 '아부레이수나'와 모를 다 심고 논에서 나오면서 부르는 '도움소소리', 논을 맬 때 부르는 '애벌매기소리'와 '상사디야', 논을 다 매고 나오면서 부르는 '방애소리'·'에이용소리',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캥마쿵쿵노세, 마당논매기, 타작소리인 '봉헤야'가 있다. 모심기소리나 논매기소리가 모두 느리고, 길게 빼는 음을 많이 쓰고, 노래를 메기고 받을 때에 앞소리의 끝과 뒷소리의 앞을 부분적으로 겹치게 불러 이중창적인 효과를 내는 점은 예천 통명농요의 특징이다. 한편 재단법인 나요당 농요상기념사업회는 40여 년을 농요 보존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나요당 이소라 이사장의 단독 출연재산으로 운영되는 재단이다. 농요연구 권위자 나요당 이소라 이사장은 "이 상은 당분간은 농요의 전승,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참된 일꾼을 그동안 보아온 자들 중에서 수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최측은 "정관에는 3년마다 1회 수여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농요기념비가 2026년도에 세워진다면, 함께 제2회나요당농요상 시상도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농요기념비를 금년에 세울려고 오석을 보령에서 주문해 놓고 새겨질 글씨도 서예가로부터 받아놓았지만, 보존회 건물이 새로 증축되어서 1회 농요상만 시상하였다"고 전한다.
-
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15)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마두희(馬頭戱)가 뭘까?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 안동대 한양명은 '대보름 무렵에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라고 정의했다. 2014년 '비교민속학'에 게재한 「울산 마두희의 전승양상과 지역성」에 보다 자세한 내용을 풀어썼다. 『학성지鶴城誌』(1749), 『여지도서輿地圖書』 경상도보유(慶尙道補遺)편 속의 『울산부읍지蔚山府邑誌』(1557∼1765),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속의 『울산부읍지』(1832), 『영남읍지嶺南邑誌』 속의 『울산부읍지』(1895), 『학성잡기鶴城雜記』(1902) 등 관련 기록을 이미 소개하고 분석했다. 말과 관련된 민속놀이나 줄다리기에 대한 문헌들이 희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만큼 마두희가 울산지역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니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풍속이다. 여기서 내가 생각했던 것은 말(馬)과 관련되었을 가능성 추적, 어떤 특징을 가진 줄다리기인가를 헤아려보는 일, 울산 동대산의 형국이 말머리인데서 비롯되었다 하니 풍수지리와 관련하여 해석하는 일 등이었다. 남도지역에서도 고을마다 마을마다 행하던 줄다리기가 있었다. 정월 대보름이 이 연행의 중심이긴 하지만 2월 1일 '하릿날'에서 추석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여기서 마두희의 맥락을 상고해보는 것은 남도지역을 포함한 우리나라 줄다리기의 종다양성을 포착해보자는 취지이기도 하다. 제주도 약마희(躍馬戱)와 신안 도초도 죽마제(竹馬祭) 다시 읽기 대부분의 줄다리기를 벼농사권의 민속놀이로 해석하는 이유는 줄의 재료 중 볏짚이 가장 많이 활용되고 칡, 억새, 죽피 등이 보조재로로 사용된다는 점을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줄다리기는 아니지만 제주도 영등굿에 남아있는 약마희(躍馬戱, 영등신을 치송할 때 행했던 민속놀이)의 사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말(馬)을 이름으로 쓴다는 점에서 그렇다. "2월 초하루 귀덕, 김녕 등지에서는 장대 12개를 세우고 신을 맞이하여 제사지낸다. 애월에 사는 사람들은 말머리 모양의 떼배를 만들어 채색 비단으로 꾸미고 약마희를 해서 신을 즐겁게 한다. 보름이 되어 끝내니 이를 연등이라 한다. 이 달에는 승선을 금한다." 장대는 목간(木竿)이다. 떼(槎) 모양의 말머리(馬頭)처럼 만들어진 떼배다. 왜 이런 배를 만들어서 비단으로 곱게 꾸몄던 것일까? 지금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지역 축제에서 매우 화려하게 배를 장식하는 사례를 견주어볼 필요가 있다. 한편 신안군 도초면 고란리에는 당제(堂祭) 말미에 연희하는 죽마놀이가 있었다. 죽마제(竹馬祭)라고 한다. 지금은 간척되어 내안이 농토가 되었지만 본래 해안 마을이다. 제주도의 약마희가 연희되었던 공간과 유사한 배경이라고나 할까. 당산의 신격이 마신(馬神)이다. 대나무로 말의 골격을 만들고 머리는 짚으로 엮어 단단하게 뭉쳐서 한지로 씌우고 먹으로 눈과 코를 그린다. 귀도 대나무로 만들고 목에서부터 큰 대를 세 갈래로 나누어 꼬리 부분에 붙인다. 그 위에 사람이 탈 수 있도록 한다. 양쪽 두 갈래의 대기둥 안에 발을 넣게 한다. 꼬리는 댓잎으로 만든다. 마부가 끌 수 있도록 목에 줄을 걸고 양쪽에 매어둔다. 마을당제의 말미에 이 대나무로 만든 말을 타고 연희하는 일종의 마을극이다. 물론 농경에 기대어 이 놀이를 해석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지문(地文)에서 해문(海文)으로, 울산 마두희에 길을 물어 울산의 마두희는 어떤 맥락을 가지고 있을까? 중국의 경우, 마두(馬頭), 즉 말머리는 실제 말(馬)의 머리를 뜻하기도 하지만, 대개 선착장 즉 포구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우리도 전국에 관련 용례들이 남아 있다. 당(堂)머리(堂頭), 닭머리(鷄頭), 용머리(龍頭), 개(바다)머리, 칡(작은 고개)머리 등은 바닷가로 툭 튀어나온 곳 즉 곶의 다른 말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긴 하지만 곶은 주로 ~고지, ~구지, ~몰, ~말, 심지어 ~미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국에 분포한 말머리의 용례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현용준이 제주도의 조리지희(照里之戱, 줄다리기)를 이두식 표현으로 해석하여 '조리'를 '줄'로 읽어낸 바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지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만 결론만 말한다면 울산의 마두희는 해양문화적 맥락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대개 용(龍)으로 관념되는 울산 내안(內岸)의 어떤 정기를 동해로 흘러나가지 못하게 막는, 아니면 동해의 어떤 기운들을 서쪽편으로 끌어올려 울산부의 기운을 보강한다는 의미들이 들어있다. 풀어 말하면 '동대산 말머리 돌리기 의례'라고나 할까. 동대산에 새겨진 삶의 기록들, 울산에 새겨진 아마도 반구대 암각화까지 거슬러 오르는 사람들의 기억들을 소환하고 거기에 질적인 가치를 담아내는 인문학적 방식이었을 것이다. 대보름이나 추석이 아닌 단오의 행사였다는 점이 그렇고, 비녀목이 아니라 '곳나무(배에서 쓰는 나무)'를 쓰는 것이 그러하며 짚줄이 아니라 칡줄을 사용했던 것이 그렇다. 무엇보다 '말머리(馬頭)'가 마을의 중앙이 아니라 선착장 혹은 '곶'을 함의하는 포구라는 점이 그렇다. 더구나 줄다리기와 씨름을 끝내고 당산목에 감거나 풍요다산을 위해 나누는 것이 아니라 태화강 태화나루에 줄을 내려 배와 관련된 수요를 충족했다는 것 아닌가. 따라서 기왕의 줄다리기들이 땅 특히 벼농사와 관련된 논에 새겨진 삶의 기록들을 소환하는 기억의 장치라면 울산의 마두희는 동해로 횡단하는 물길과 반구대, 장생포, 개운포 등 해양문화적 함의를 포괄하는 줄다리기라고 어찌 아니할 수 있겠는가. 벼농사를 중심 삼는 지문(地文)이 아닌 해문(海文)으로서의 정체를 소환하고 동해의 의미들을 이끌어내는 기제로 울산 마두희의 질적 가치를 다듬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줄다리기 놀이의 근원과 심연 문헌에 나오는 줄다리기 관련 이름들은 발하(拔河), 삭전(索戰), 조리지희(照里之戱), 갈전(葛戰) 등이다. 삭전은 줄(索)을 당기는 놀이라는 뜻이고 갈전은 칡(葛)줄을 당기는 놀이라는 뜻이다. 발하희(拔河戱)로 기록된 것은 이 놀이가 중국의 발하(拔河)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줄을 당기던 놀이였기 때문이다. <한국필리핀축제문화교류협회> 김정환 이사장에 의하면, 필리핀에서도 강을 사이에 두고 줄을 당기는 사례가 현존하고 있다. <기지시줄다리기> 세계 줄다리기 자료편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함께 등재된 필리핀에서는 벼를 수확한 후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제사와 축제가 벌어지는데 이 행사의 마지막 순서가 줄다리기이다. 필리핀 홍두안 지역에서는 넝쿨, 볏짚, 나무묘목을 사용해 줄을 만들어 계곡물에 들어가서 줄을 당긴다." 물론 벼농사와 관련시켜 해석하고 있지만 광의의 줄다리기는 '줄자르기'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내가 '줄 자르기'에 관한 논문에서 밝혀두었지만 줄다리기의 맥락은 보다 더 근원적인 관념이나 철학 속에서 추적해야 할 놀이이자 의례다.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힌두교 발 '우유바다 휘젓기'나 본 지면을 통해 이론화했던 '테이프컷팅' 이른바 '탯줄 자르기'의 심연이 깃들어 있는 까닭이다. 울산 마두희를 해양문화적 관점에서 읽어내는 것은 줄다리기의 근원을 보다 깊게 하는 것이자 보다 깊고 넓은 줄다리기의 종다양성을 끄집어내는 의미이기도 하다.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안동대 산학협력단, ‘하회선유줄불놀이의 전승과 무형문화적 가치’ 학술대회안동 하회선유줄불놀이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규명하고, 축제화 방안을 모색하는 학술대회가 개최된다. 오는 20일 오전 10시부터 국립안동대학교 국제교류관 중회의실에서 열린다. 이번 학술대회는 문화재청의 ‘2023년 미래무형문화유산 발굴·육성 사업’ 공모에 선정된 안동대 산학협력단의 줄불놀이 사업단이 주최하며, 경상북도와 안동시가 후원을 한다. 양반 놀이문화의 정수로 평가되는 하회선유줄불놀이는 하회의 방풍림인 만송정쑤에서 화천을 가로질러 부용대로 이어지는 줄불, 맞은편 절벽 위의 부용대에서 불타는 솟갑단을 절벽 아래로 던지는 낙화,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화천 위를 수놓아 떠다니는 달걀불로 이뤄졌다. 과거 하회에서는 7월 기망(旣望)의 시기에 선유줄불놀이가 행해졌으나, 일제강점기에 그 전승이 단절되고 말았다. 1960년대 이후 선유줄불놀이의 재현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졌고, 현재에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비롯한 지역의 중요 행사 프로그램으로 연행되는 등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하회선유줄불놀이의 전승과 무형문화적 가치'를 주제로 개최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민속학자, 문화콘텐츠 전문가 등이 참여해 선유줄불놀이의 역사, 현대적 재현과정, 문화유산적 가치와 축제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제1세션에서는 한양명 안동대 문화유산학과 교수의 ‘낙화놀이의 유형과 하회 선유줄불놀이의 위상’을 주제로 발표가 시작되며, 이어 놀이연구소 ‘풂’의 소장인 이상호 박사가 ‘낙화놀이의 분포와 유형 비교'를 주제로 발표한다. 제2세션에서는 지역 문화산업체 도움소의 우종익 대표가 ‘낙화봉의 제작방법과 전승지식’을, 국립무형문화연구원의 정형호 박사가 ‘하회선유줄불놀이의 무형유산적 가치’를, 안동대 문화유산학과 이진교 교수가 ‘하회선유줄불놀이의 현대적 전승양상과 축제화 방안’을 주제로 발표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학술발표뿐만 아니라 하회마을보존회 전현직 이사장을 비롯한 주요 전승자가 참여하여, 선유줄불놀이 활성화를 위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경청·반영할 수 있는 자문회의도 함께 열린다. 이진교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가 "하회마을의 대표적 볼거리이자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선유줄불놀이의 문화유산 지정과 현대적 활용방안을 위해, 그동안 진행되었던 조사·기록화 사업의 추진 성과를 집약해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봉화군, 이몽룡 실존인물 재조명...‘계서 성이성 문화제’경북 봉화군이 판소리 춘양가 속 이몽룡의 실존인물로 알려진 계서 성이성을 재조명하는 ‘계서 성이성 문화제’를 오는 21일부터 24일까지 봉화읍 체육공원에서 개최한다.12일 군에 따르면, 계서(溪西) 성이성(1595~1664)은 조선 청백리로 칭송받는 정치가이자 문인이다. 소설 '춘향전' 속 '이몽룡'의 실제 모델이다. 아버지는 남원부사와 승정원 승지를 지낸 성안의다.성이성이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서 생활하며 만난 기생과의 일화가 후일 춘향전의 소재가 된 것으로 보인다.성이성은 호서 암행어사와 호남 암행어사로도 활동했는데 이 역시 춘향전의 소재가 됐다. 성이성의 업적을 볼 수 있는 전시와 어사화, 마패 만들기 등의 체험, 과거에 급제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유가행렬이 재현된다.21일 오후 1시 30분 봉화송이한약우축제장 주무대에서는 '춘향가'에서 이몽룡을 노래하는 판소리와 정가 등 국악 공연을 선보이는 '성이성 풍류 한마당'도 펼쳐진다. 한편, 봉화군은 지난달 23일 봉화청소년센터에서 경북불교문화원과 판소리학회, 안동대 인문과학연구소 공동주관으로 이몽룡과 배트남 리 왕조 후손으로 고려시대에 귀화한 화산이씨 시조 이용상 선생과 관련한 역사문화 콘텐츠의 가치를 확인하고 활용 가능성을 모색하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
한국구비문학회학술대회 "한국구비문학회 30년 연구의 성과"11일 한국구비문학회 3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구비문학회 30년 연구의 성과라는 주제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14동 지하1층 b101호에서 여러 발표를 준비하였다. 한국구비문학회의 30년의 발자취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제1부 ∘ 한국 고전 서사문학에 나타난 책방형(冊房型) 인물의 형상과 특징 : 송미경(한국항공대)[토론] 신호림 (안동대) ∘ 한국 구비 문학의 세계무대: 국제스토리텔링 축제의 역할 : 방동주(한국국제스토리텔러협회)[토론] 박정애 (강원대) ∘ 근사체험담의 위상 : 최귀묵(고려대)[토론] 김수연 (서울여대) ∘ 신화와 뮈토스 사이: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에 나타난 모성 뮈토스 만들기 : 나수호(서울대)[토론] 한정훈 (전남대) 제3부 ∘ [기조] 한국구비문학회 30년 연구의 성과 : 최원오(광주교대) ∘ 한국구비문학회 30년, 무가 연구의 성과와 과제 : 김형근(전북대) ∘ 구비문학의 현대적 활용: 콘텐츠와 다문화를 중심으로 : 이성희(총신대) ∘ 구비문학연구 30년, 민담분석의 성과와 과제 : 김정은(건국대) ∘ 한국구비문학회 30년, 판소리 연구의 성과와 한계 : 서유석(경상국립대) ∘ 한국 전통 연희 연구의 현황과 과제 : 손태도(호서대)
-
이름처럼 살다 간 아리랑 명인 정은하!고 정은하(1956-2023)명인! 영천 출생으로 아리랑 명인이다. 2012년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시 혁혁한 기여를 했다. 아리랑 리더로서 전국 아리랑공동체 결속에 기여해 왔다. 영남아리랑보존회장을 맡으면서 지부와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영남지역 25여 지부와 제주도아리랑보존회, 울릉도아리랑보존회 를 탄생시켰다. 특히 영천아리랑 음반(1999년), 대구아리랑(2003년), 영남지역 아리랑 음반(2006년)을 남겼다. 또한 2003년부터 대구아리랑축제와 대구아리랑전국경창대회를 개최해 왔다.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장으로서 사할린아리랑제에도 함께 해왔다. 사비를 털어 제1회 상주아리랑제(2008년)와 제1회 울릉도아리랑제 첫 막을 여는데 큰 역활을 해주었다. 정은하 선생은 영남지역 민요와 영남아리랑을 전승하고 있는 전승자로서 현장조사시 음악적 분석에 대해서 탁월한 안내를 해주었다. 그만큼 연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음악적 기량과 기억력이 좋아서, 언제나 전화만 해도 궁금해 하는 각 지역 아리랑은 물론 경기민요에서부터 서도민요, 영남민요는 지역의 토리대로 척척 불러주었다. 특히 잘 들리지 않는 일제강점기 SP음반 음원을 녹음해서 보내면 사설을 줄줄 풀어 주었다. 필자가 2009년부터 안동대 민속학연구소에서 수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현장조사사업단 연구원으로 참가하던 시절에 채록한 음원을 들려주면, 서울 사람 귀에는 전혀 채록이 안되는 발음과 사투리 뜻까지 해결해 주었다. 영남지역 향토민요 전승단체들과 학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주었다. 우리 연구자들이 이렇게 빚을 지었다. 17세 되는 1970년대 중반부터 31살까지 서울에서 국악활동을 했지만. 평생 투박하지만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 그대로 말하는 것이 매력이고, 타고난 리더로서 여장부였다. 제자들의 학비도 대주는 등 많은 장학사업을 했다. 결혼도 안하고 평생 함께해 온 국악계 명사와 소리꾼들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전해 주었다. 스승이신 이창배 선생부터 이춘희 선생까지 국악계와 국악인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나에게는 30년 동안 함께 협력해 온 아리랑운동 동지였다. 이제는 그 이름처럼 하늘에 별이 되었다. 별이 되어 은하수로 돌어갔다. 정 은 하!! (아리랑학회 연구이사 기미양)
-
한국유교문화진흥원, 희귀본 ‘상례비요’ 기증받아 예학 연구 박차한국유교문화진흥원은 6월 21일, 한국예학 연구가 장동우 교수(62세, 안동대 학술연구교수) 소장 예학 고서 기증식을 열고 기증증서와 감사패를 전달했다. 장동우 교수는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조선시대 관혼상제 등 가례(家禮) 연구에 30년 이상 매진해 온 학자로, 현재 한유진 내에 설치된 한국예학센터의 연구 자문으로 추진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연으로 이번 예서 기증이 성사되었다. 이번에 기증된 예서는 장동우 교수가 자신의 연구를 위해 오랫동안 수집하고 소중히 간직해온 자료들로, 김장생의 『상례비요(喪禮備要)』, 안신의 『가례부해(家禮附解)』, 이황의 『퇴계상제례답문(退溪喪祭禮答問)』 등의 예학서로 총 176종 456책이다. 이 가운데 상례비요는 1648년부터 1888년 사이에 돈암서원, 평안감영, 경상감영, 길주목 등에서 간행된 목판본으로 14종에 이른다. 이번에 기증된 평안감영 간본과 함경도 길주목 간본은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가 많지 않은 희귀본으로 의미가 매우 크다. 이 외에 17C에 간행된 구준의 『문공가례의절』, 주자의 『가례』, 조호익의 『가례고증』, 김장생의 『가례집람』 등도 예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무엇보다 이번 자료 기증은 올해 4월 한유진 한국예학센터 개설 이후 불과 2달 만에 한국 유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다종 다량의 예서를 수집하여 한국 예학 연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장동우 교수 역시 기증식에서 이 자료가 ‘한국예학센터’의 기초 연구자료로 충실히 활용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하였으며, 정재근 원장은 소중한 자료를 기증한 데 대한 감사 인사와 함께, 일평생 한국예학 연구에 매진한 장동우 교수의 연구성과와 의지를 한유진이 이어받겠다는 뜻을 전했다. 한편,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은 작년 10월, 충남 논산에 개원한 전국 최초의 유교문화진흥을 위한 공공기관으로 K-유교 문화의 가치 제고와 대중화에 앞장서 나가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 충청권 거점‘국학진흥사업’과 ‘한국예학 DB 및 활용시스템 구축’ 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9) 한국의 지역춤, 대구·경북지역의 춤지리와 기후환경에 따른 대구·경북인의 기질 대구·경북지역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남동부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두대간의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기후(盆地氣候)를 이루고 있어 분지 내부의 복사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심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자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는 신조어를 쓸 정도로 무더운 날이 많다. 그리하여 대구·경북인들은 뛰어난 적응력과 강인한 개척정신, 의리와 결단력을 중시하며 이러한 생태환경적 배경으로 대구·경북지역만의 독특한 춤문화를 형성하여 발전시켜왔다. 신라 천년의 문화적 배경과 춤전승 대구·경북지역은 역사적으로 서라벌(경주)을 도읍지로 시작해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1천 년 동안 행정, 산업,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전통적으로 보수성과 선비정신이 높은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행정의 중심이 송도(개성)와 한양(서울)로 옮겨진 고려와 조선시대까지도 영남호족의 세력이 여전히 핵심을 유지하면서 오늘날까지 ‘선비(양반)정신’이 깃들어 있는 독특한 지역춤의 특성을 전승하여왔다. 신라시대 악성(樂聖) 우륵이 가야금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는 가야지무(伽倻之舞), 한기무(韓岐舞), 미지무(美知舞), 대금무(?琴舞)가 있었고, 계고(階古)에게는 가야금을, 법지(法知)에게는 노래를, 만덕(萬德)에게는 춤을 각각 가르쳤다는 기록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전한다. 뿐만 아니라 황창무(黃昌舞)와 처용무(處容舞), 상염무(霜髥舞), 무애무(無?舞), 오기(五伎) 등 남성춤도 많았다. 그밖에도 도솔가무(兜率歌舞), 회소곡(會蘇曲), 그리고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가무백희(歌舞百戱) 등 민간생활과 밀접한 춤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경상감영의 관기와 권번춤 전승 임진왜란(1592-1598) 이후 대구지역에 감영 설치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경주와 상주로 이어져 온 경상감영이 1601년(선조34년)에 대구로 이전하게 되면서 경상도의 중심적 거점도시로 변모되면서 국가와 지역적 행사가 많아졌다. 경상감영(지금의 중구 포정동 경상감영공원 일대)과 대구부(大邱府)에 소속된 관기(官妓)들의 악가무 활동이 활성화 되었던 것이다.<『대구부읍지(大邱府邑誌)』(1736년,영조 43년),『대구읍지大丘邑誌』(1768년 발간), 『경상도 읍지』(1832년경), 『영남읍지』(1871년경,1895년),『자인총쇄록(慈仁叢鎖錄)』(1888) 등> 그러나 일제에 의해 1909년 4월부터 실질적으로 관기제도가 폐지되자 경상감영과 대구부 관청에 소속되어 있던 교방의 관기들이 사회로 진출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모임이 1910년 5월에 결성한 ‘대구기생조합’이다. 1914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에 수록된 예인 100인 중에는 대구출신으로 조산월(趙山月), 옥화(玉花), 향심(香心), 설경패(薛瓊佩) 등 4명이 대구기생조합이나 서울로 진출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1918년 출간한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아오야나기 고타로(靑柳綱太郞), 지송욱(池松旭) 편저)에는 조선 예기 611명 중 대구조합(大邱組合) 소속 32명, 김천조합 소속이 3명이나 기록되어 있고, 고무(鼓舞), 승무, 각항(各項)정재무, 검무, 남무 등을 잘 추었다고 하였다. 1922년부터 ‘대구권번’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1927년 ‘달성권번’이 새로 설립되었다. 무형문화재 종목의 연희와 춤들 대구·경북지역이 고대부터 근대까지 영남지역의 중심지였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제침탈의 거점인 부산·경남지역이 중심도시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유교와 양반문화를 비롯한 예술문화는 여전히 대구·경북지역에 뿌리 깊게 남아있었다.농악영남지역 농악이 다른 지역 농악과 가장 큰 차이는 시각적으로 엄청나게 큰 고깔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영남북부권이 남부권보다 더 큰 고깔을 쓰는 경향을 보이며, 판굿도 발달하여 7종목(고산, 욱수, 청도차산, 금릉, 비산(날뫼), 구미무을, 경산보인)이나 지정되어 있다. 그 특징은 원박적이고 아주 빠른 리듬과 웅장한 북춤과 화려한 고깔춤이 발달했으며, 천왕매기굿(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굿)이나 지신밟기에서 잡귀잡신을 쫓는 힘찬 덧배기가락과 덧배기춤이 발달했으며, 개인놀이보다 집단놀이와 뒤풀이춤이 발달했다. 고산농악(대구 1호)은 농기구를 앞세우고 태극무늬로 도는 덩덕궁이, 원을 돌며 각자 춤추는 춤굿, 손잡고 원을 돌면서 닭을 쫓는 닭쫓기, 나선형(螺旋形)으로 들어갔다 풀어 나오는 방석말이 등이 특징이다. 욱수농악(대구 3호)은 동제당 앞에서 신내림을 받는 천왕받이굿과 원형으로 춤을 추는 둥글데미, 세로 2줄로 마주보고 앉은 연주자들을 상쇠가 Z형으로 빠르게 돌면서 징·북·장구·법고 열로 끊어 일으켜 풀어나가는 외따기와 흥겨운 어깨춤을 추는 덧배기춤 등이 특징이다. 청도차산농악(경북 4호)은 천왕기(天王旗)싸움에서 발달한 농악으로 꿋꿋하고 향토적인 옛스러움과 질박함을 간직하고 있으며, 장단을 외가락으로 빨리 몰아가는 경우가 많아 소박하고 씩씩한 느낌을 준다. 금릉빗내농악(경북 8호)은 마을의 성황제와 풍년을 기원하는 별신제(別神祭)가 섞여진 동제(洞祭)의 형태로 진풀이 농악과 무당굿과 줄다리기 등이 혼합되어 가락이 매우 강렬하고 종류도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날뫼북춤(대구 2호)은 대구비산농악에서 북을 연주악기로 추는 북춤만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특유의 덧배기가락(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덩덕궁이, 자반득이(반직굿), 엎어빼기, 다드래기, 허허굿, 모듬굿, 살풀이굿, 덧배기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미무을농악(경북 40호)은 쇠와 소고는 전원이 전립에 상모를 쓰고 이외에 배역들은 모두 백색의 큰 고깔을 쓰는데, 고깔의 꽃송이들은 춤사위에 따라 움직이게 한다. 길굿가락과 정적궁가락, 덧배기가락 등 경상도 특유의 쇠가락이 발달하였다. 경산보인농악(경북 41호)은 전형적인 모의농사굿 형식이면서도 다른 지역과 달리 글자놀이가 발달하였고, 섬세한 덩덕궁 가락과 삼채가락이 조화를 이루고, 특유의 별다드래기장단과 덧뵈기장단이 가락의 주를 이루어 화려하고 웅장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탈춤탈춤은 부산·경남지역 낙동강 하류에 7종목(야류·오광대)이나 국가 또는 지방무형문화재가 지정되었고 연희적인 면이 발달했으나, 대구·경북지역은 별신굿놀이 성격으로 재담이 적고 연희보다 의식성이 많은 하회별신굿탈놀음(국가 69호)과 예천청단놀음(경북 42호) 2종의 탈춤이 전승되고 있을 뿐이다. 별신굿이란 마을의 수호신인 성황(서낭)님에게 마을의 평화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굿을 말하며, 더불어 수호신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하여 탈춤을 추었다. 하회별신굿탈놀음의 탈은 고려시대에 제작한 것으로 1964년 하회탈 및 병산탈(10종11개)로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탈놀음의 반주는 꽹과리 중심의 풍물꾼이 하며 즉흥적이고 일상적인 동작에 약간의 율동을 섞은 춤사위로 이루어지는데 우리나라 탈춤의 기원과 전승을 밝히는 귀중한 자료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예천청단놀음은 대구·경북지역의 향토성을 보이면서 벽사진경을 추구하는 주술성과 상류층에 대한 풍자를 투박한 춤과 몸짓, 토속적인 가락에 실어서 전달하고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키로 만든 큰 탈이 쓰인다는 점, 신령스런 동물이 부정을 물리치는 듯이 하는 동작과 춤에 커다란 부채모양의 주지판이 사용된다는 점 등의 특징을 지닌다. 소리춤안동놋다리밟기(경북 7호)는 안동지방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던 여성들만의 민속놀이로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공주를 데리고 안동으로 피난을 와 개울을 건널 때 마을의 부녀자들이 허리를 굽혀 다리를 놓았다는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놋다리밟기는 맨 앞에 노년부터 젊은 부녀자 순으로 수십 명의 여자들이 모두 허리를 굽혀 앞사람의 허리를 두 손으로 잡고, 머리는 앞사람의 궁둥이 왼편에 대는데 마치 생선을 꿰어 놓은 듯한 모습이다. 시녀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공주가 등(다리 역할) 위를 밟고 지나가면 밑에 있던 사람들은 다시 행렬 맨 앞에 구부려 다리는 그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안동놋다리밟기는 모든 여성이 한데 모여서 노래를 부르며 즐기는 규모가 큰 향토오락으로 승부를 내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소리춤으로 호남의 진도 해남 등지에 강강술래가 있다면, 영덕지역에는 월월이청청(비지정)이 있다. 노래와 춤놀이에는 달람세, 절구세, 둥둥데미, 실감기 등의 소리춤이 전한다. 근대 춤 전승 인맥 1950년 6.25한국전쟁으로 부산·대구지역만 남게 된 정부는 일시적이나마 대구에 중앙국립극장(현재 대구 CGV한일극장으로 재건축)을 지정하여 수많은 예술인과 무용들의 공연이 집중되는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었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정소산 → 백년욱(대구 18호)정소산(호 小山, 본명 鄭柳色, 1904~1978)은 1900년대 신무용의 거센 바람 속에서 궁중춤에 대한 소중한 가치와 전통의 맥을 전승·보존하며 대구교방춤의 맥을 이어온 선구자이며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정소산은 대구출생으로 대구기생조합에서 김수희 조합장의 춤을 배운 후 17세(1921)에는 서울 대정권번에서 하규일(1867-1937)로부터 1923년 19세에 본격적으로 궁중춤을 배웠고, 1925년 23세 때에는 조선권번에 있던 대가 한성준(1874~1942)으로부터 승무를 배웠다. 『조선미인보감』(1918)에 보면 "예쁜(좋은) 이마와 발을 가졌으며 청랑한 음성으로 시조잡가를 하는 특징이 소개되고 있으며 부드럽고 착한 성품으로 처음 보아도 구면에 본 것 같고 행동과 말투가 구수하다”고 정소산의 인물과 성품을 묘사했다. 그리고 1926년 이후 고향 대구로 돌아와 ‘정소산고전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가야금을 비롯한 춘앵무, 포구락 등 궁중정재와 살풀이춤, 승무, 장고, 법무 등을 가르쳤다. 제자 백연욱은 1955년 열 살이 되던 해 정소산의 문하에 들어가 스승이 타계할 때까지 함께하면서 정소산의 춤 세계를 체득했으며, 2015년 대구시 무형문화제 제18호 정소산류 수건춤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이 춤은 궁중춤과 민속춤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수건춤으로, 처음 등장하여 먼저 절을 올리고 춤을 추는 궁중춤의 예법과 춤사위가 장중하고 단아하며 절제미가 있는 점이며, 춤이 전개됨이 따라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흥을 돋우는 민속춤의 요소도 함께 담고 있다. 박지홍 → 권명화(대동권번, 대구 9호), 최희선(달성권번)1911년에 대구조합과 뒤를 이은 대구권번의 악가무 지도사범으로 초빙되어 지도하던 강태홍(姜太弘,1893-1957)이 부산 등지로 떠나고 뒤를 이어 1920년대 후반 초빙된 이는 전남 나주 출신으로 판소리 명창 박지홍(朴枝洪, 1884,-1958)이었다. 박귀희(朴貴姬), 박초향(朴初香), 박동진(朴東鎭,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등이 판소리를 배웠다. 일제강점기 대구에는 대구기생조합(대구권번), 달성권번과 대동권번 세 곳이 있었다. 이때 1927년 문을 연 달성권번에서 박지홍이 창, 기악, 춤을 지도하였다. 1940년 전후로 설립된 대동권번 역시 기본 춤, 시조, 창 등을 공통과목으로 하고 춤으로는 입춤, 살풀이춤, 검무, 승무, 소고춤 등을 가르쳤다. 이러한 박지홍 권번 교육은 최희선, 권명화에게 계승되어 현재 대구지역의 대표적인 전통 춤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최희선(1929~2010)은 10세 후반 명인 박지홍에게 전통춤을 배웠고, 상경하여 1945년 장추화 무용연구소에서 춤을 배웠다. 한영숙에게 전통춤을 사사받고 1950년 6.25 전쟁 이후 대구에 내려가 박지홍의 춤을 다시 배워 달구벌 입춤 명무로 유명하였다. 권명화는 1934년 경북 김천출생으로 6.25전쟁 중 피난간 대구에서 절집의 풍악소리에 사로잡혀 영남 최고의 풍류객 박지홍을 만나 1950년부터 사사받고, 그에게서 배운지 6개월 만에 대구극장에서 열린 무용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1955년 박지홍 고전무용학원 강사가 되었다. 1995년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9호 살풀이춤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권명화 살풀이춤의 특징은 수건으로 고(苦)매듭을 엮었다 푸는 살을 푸는 과정이 유일하게 담겨있고 영남교방춤과 덧배기 춤가락이 깃들여 있는 점이다. 그밖에 권명화가 전승하고 있는 춤은 승무, 입춤, 소고춤, 검무 등과 경산자인단오제(국가무형문화재 제44호)의 여원무를 비롯하여 단오굿 일곱거리의 굿춤이 있고, 축원춤으로 산거리춤(방울과 부채), 지전춤, 선비춤(한량무), 바라춤, 선녀춤, 오방신장춤, 장군칼춤 등이 있으며 건들바위 치성굿’도 복원하였다. 김상규 → 최영자, 이숙재, 주연희, 박성실 등대구 현대무용을 존속케 하는 역사적 인물은 김상규(金湘圭, 예명 技波, 1922-1989)다. 김상규는 1931년 9월16일 대구극장에서 공연한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공연을 보면서부터 무용에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법학공부로 판검사가 되겠다는 핑계를 대고 14세(1935)에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 와세다중학교를 다니면서 저녁에 이시이바쿠 연구소에 가서 신무용을 배웠으며, 1941년 와세다대학 문학부와 1943년 동경음악과를 수학해 다방면의 관심을 보여주었고, 1946년 10년의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상규는 1946년 귀국 후 바로 신무용연구소를 개소하였고, 1949년 자신의 무용단을 창단하고 만경관에서 가진 그의 ‘김상규 신무용 발표회’가 대구지역에서 자생한 신무용의 첫 보급이라 할 수 있겠다. 1951년부터 김상규 무용발표회가 국립극장(키네마극장, 현 한일극장, 전쟁 중에 중앙국립극장이 대구로 옮겨짐)에서 자주 열렸다. 이처럼 해마다 작품 발표회를 하다 보니 논밭을 팔고 결국은 집까지 팔게 되어 셋방으로 전전하면서도 춤에 대한 열정은 더욱 높아졌다. 김상규는 무용인으로는 처음으로 1957년도 경상북도 문화상을 수상하였고, 1989년 작고할 때까지 100여 편의 작품을 안무하였다. 손꼽히는 제자로는 최영자, 백운향, 박덕남, 박덕순, 백년욱, 이숙재, 김상아, 주연희, 서진은, 장성자, 오애리, 정선자, 김예숙, 이명주, 박성실, 김미연 등이 있다. 여성들도 사회적 인식을 깨기 힘든 시절에 남성무용가로 대구의 현대무용을 개척하고 뿌리내리게 한 선구자로 평가할 수 있다. 정막(정순영)과 김기전김상규와 별도로 대구 현대무용의 역사에 빠져서는 안 될 인물로는 정막(鄭漠, 본명 鄭淳永, 1928~2012)과 김기전(金起田, 1935~) 부부를 들 수 있다. 이들은 1950년 무용교육에 뜻을 두고 원화여고에서 정막 무용연구소로 출발했다고 언급한다. 정막은 1947년 겨울, 서울 명동의 함귀봉이 설립한 조선 교육 무용연구소(문교부 인가)에 첫 발을 디딘 것이 무용예술의 입문이었고, 6.25사변을 통해 무용과 더욱 깊은 인연을 맺었으며, 1953년 부산극장 종군극작가단 신작무대에 <인어의 정설>로 출연하고, 그해 8·15경축무용제에 중앙국립극장(당시 대구)에서 송범, 김진걸, 이인범과 함께 출연하였다. 그리고 1954년 중앙국립극장(대구)에서 정막의 안무로 제1회 개인발표회를 가졌다. 김기전은 1935년 동경에서 태어나 1950년 피난시절 이인범발레연구소에서 공부하고 1952년 임천수 국보오페라단에 1954년까지 단원으로 활동했다. 1954년 7월 육군 군예대(KAS)에서 무용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8년 12월에는 경북무용협회가 결성되어 키네마에서 창립공연을 하였는데, 정소산, 정막, 최희선, 현학선, 박금슬, 문소조 등이 출연하였다. 1961년 대구바레아카데미를 창설하고 대구지역에서 현대춤과 발레를 교습하여 춤 인재를 양성하였다. 김기전은 국내 최초로 대구시립현대무용단을 설립하여 초대(1981~1988년) 안무자로 대구 현대무용계를 직업무용단으로 이끌어왔다. 정막은 춤 실연자이자 춤 연출자, 안무가로서, 그리고 춤 교육자, 이론가, 평론가로서 대구, 경북지역 춤문화의 구심체였다. 2000년에 이르러 (사)대구시민문화연구소를 차려 대구지역 춤문화를 비롯하여 시민문화 향상에 매진해온 일은 중앙중심의 무용편중에 대한 대항마이기도 하였다. 대구·경북지역의 춤 미래 대구·경북지역이 오랜 역사의 부침(浮沈)속에서도 영남춤의 보편적 특징, 영남 북부춤의 중심적 특징과 더불어 향토춤의 특징을 온전히 전승할 수 있었던 것은 유난히도 춤 신명이 많고 춤추기를 좋아하는 지역의 심성에서 비롯하였다고 본다. 20세기 초기에는 정소산, 강태홍, 박지홍, 김상규 등 춤 명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지역춤을 발전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고, 뒤를 이어 20세기 후반에는 최희선, 권명화(대구 9호), 백년욱(대구 18호) 등이 그 명맥을 이어받았다. 현대춤과 발레 역시 끝까지 지역을 지켜 온 김상규(안동대 교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지역출신 무용교수가 많은 것도 근원적으로 춤의 고장이기 때문이지만 김상규가 대학교수로 무용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대학 무용학과를 개설하고 춤세계를 개척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울로 진출한 이숙재(한양대 명예교수), 김복희(한양대 명예교수), 박인숙(한성대 교수), 백현순(한체대 교수) 등이 ‘춤의 고장’의 토양에서 성장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지역에서도 구본숙(영남대 명예교수), 박연진(대구 가톨릭대 명예교수), 임혜자(계명대 명예교수), 김현옥(계명대 교수), 장유경(계명대 교수), 김희숙(무용가), 박현옥(대구가톨릭대 교수), 김소라(대구가톨릭대 교수), 이화석(대구예술대 교수), 강정선(대구무용협회장), 김죽엽(한국무용가), 최두혁(계명대 교수), 오레지나(대구가톨릭대 교수), 채명(무용평론가), 김용철(섶무용단), 손윤숙(발레) 등과 수많은 무용가들이 대를 이어 대구·경북춤의 정신을 고양하면서 세계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춤의 인프라는 2015년 이래 매년 세계안무페스티벌(DICFe, Daegu International Choreography Festival)을 펼치며 세계적인 안무도시로 발전하는 초석을 다져 나가고 있다. 이병옥/전통예술 연구가, 용인대 무용학과 명예교수, 무용평론가 용인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로 25년간 재직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다 정년퇴임 종신 명예교수이다. 한국무용사학회와 한국동양예술학회, 한국공연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경기도와 서울 시문화재위원을 거쳐 현재 이북오도청 문화재위원이다. 1985년 객석 예술평론상을 수상, 무용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
문경 모전들소리보존회 정기발표회 개최문경모전들소리보존회(회장 김제수)가 지난 8일 오후2시 문경새재 1관문 앞 잔디광장에서 제9회 공개행사 및 정기발표회를 개최하였다. 농사의 고달픔과 애환을 노래에 담고 문경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유일한 농요인 ‘모전들소리’는 초청 단체들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전체 마당을 선보였다. 특히 매년 정기 공연마다 관심과 사랑을 받는 전통 상여행렬도 이날 다시 재연되여 갈채를 받았다. 이번 정기발표회는 국내 우수한 무형문화재 단체인 '예천공처농요'와 '안동저전농요'를 초청하여 인근지역 농요들의 특징과 차이점을 이해하는 학습의 장을 마련함은 물론, 전통 상여소리 시연, 경기민요, 하늘재 난타공연 등 다양한 전통문화팀을 초청하여 정기발표회의 흥과 신명을 더욱 고조시켰다. 모전들소리는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들판에서 불리고 전승되었으나 산업화와 도시화 등으로 인해 점차 사라져갔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안동대 민속학연구소 한 연구자가 2013년 ktv 방송과 안동MBC방송국에 알려서 연차로 2차례 소개되면서 문경시민들의 자발적 전승활동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당시 방송국에 소개를 한 사람은 안동대 구비문학대계 연구과제로 문경 지역 구비문학을 조사하러 온 안동대 BK 연구원 기미양씨이었다. 이후 금명효 기획국장의 민속조사를 통해 다시 알려지기 시작하여 2017년 한국민속예술축제 대통령상, 2020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문경지역의 무형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지금까지 전승∙보존되고 있다. 문경 모전들소리는 문경시 모전동 일대에서 전승해온 노동요와 의식요 및 유희요를 뜻한다. 가래질소리를 시작으로 목도질소리, 모심는소리 등 총 10가지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10년 창립한 모전들소리보존회에 의해 전승 보존되고 있다. 모전들소리보존회의 모태는 '모전중신기농악대'로, 1900년경부터 빈농들이 이 지역에 모이면서 연희되어 오다가 1940년대에 농악대가 정식으로 형성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농악대는 양수봉이라는 3대 상쇠를 통해 전승되어 현재 소리꾼 중심인물 5명 중 4명에게 전수되고 있다.음악적 측면에서 선율은 대부분 경상도 지역의 메나리 토리로 구성되었으나 인접한 상주, 예천지역의 소리와 다르고 강원도 소리와도 다른 문경 지역만의 독특한 소리가 있어 고유한 지역적 특색을 지니고 있다. 또한 '장원질소리'의 연행부분에서 상여소리를 삶과 죽음을 넘어선 일과 놀이의 일상으로 승화시키는 문경 지역민들의 독특한 사고도 모전들소리의 고유한 향토성이라 할 수 있다. 김제수 보존회장은 "늘 과분한 사랑을 받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매년 정기공연을 준비한다. 오늘 자리에 함께 해주신 문경 지역민들에게 감사드리며 지역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모전들소리' 보존과 계승,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
지역 공동체 현실문제에 대한 민속학의 반응저자들을 대표하여, 이진교 (실천민속학회장) 국립안동대학교 대학원 민속학과는 2020년 9월부터 ‘지역 공동체 현실문제에 대한 민속학적 대응과 전문인력 양성’을 주제로 4단계 BK21사업을 수행 중이다. 민속학 연구에서 지역 공동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지역 공동체는 다양한 형태의 민속이나 전통문화가 생성․전승된 공간이며, 민속학 연구의 뿌리를 두고 있는 터전과도 다름없다. 따라서 민속학의 성립부터 발전단계는 지역 공동체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대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민속학에서 지역 공동체는 늘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동안의 민속학은 주로 과거에 초점을 맞추어 민속이나 전통문화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경향이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령화나 인구감소를 비롯한 지역 공동체가 직면한 현실문제에 대해서는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한계 역시 학계 내에서 지적되어 왔다. 결과적으로 주민들이 겪는 매일매일의 일상이나 그것이 실천되는 시공간으로서의 지역 공동체에 관한 민속학적 연구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남게 되었다. 따라서, 지역 공동체 현실문제에 대한 천착은 그동안 민속학 연구의 틈새를 보완하며, 주민의 삶과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라 기대된다. 제1부는 지역 공동체의 재인식과 문제설정을 다룬다. 「인류세와 지방소멸 시대, 공동체문화의 가능성」은 인류세와 지방소멸이 결국은 동일한 문제 영역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보며, 그것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현대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와 관련짓고 있다. 나아가 인류세와 자본세로부터 그 피난처로서 새로운 가치실천 양식의 가능성을 공동체 문화를 통해 탐색한다. 「귀농인의 지역사회 적응과 사회적 자본」은 농촌 지역 ‘귀농인’의 지역사회 적응 문제를 살피고 있다. 지역의 귀농인 담론에서 그들은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의 대안적 존재로 기대되지만, 한편으로는 토착 주민과 차별화된 존재로 위치 지어진다. 이 글은 귀농인의 지역사회 적응이 결코 귀농인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귀농인-마을(지역)사회-지자체(정부)’등의 상호적응과 관련된 문제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형성은 그들의 상호작용 과정과 결과임을 환기하고 있다. 「동해안 지역의 기후변화와 어촌의 현실」은 기후변화가 바다 생태계 그리고 어민들의 어로 활동을 비롯한 생활세계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고,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놓인 어촌의 현실을 살피고 있다. 기후변화의 국면 속에서 영덕 지역에는 수온 양극화, 해저 생태계의 변화, 폭풍해일의 심화 등의 현상이 뚜렷하게 감지된다. 이 연구에서는 생태계 변화에 따른 주민의 인식과 대응을 심층적으로 살피는 한편, 이러한 혼란을 야기한 인류세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제2부는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 전통과 변환을 다룬다. 「한말 지역 공동체 구성원의 역할 형평성 전통」은 한말韓末 지역 공동체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한 모금의 사례를 통해, 그 구성원들 사이의 형평성 적용 방식과 유형을 밝히고 있다. 이 글에서 제시한 형평성의 개념은 지역 공동체 운영의 핵심원리로, 현대사회에서도 그 적용 가능성이 높은 개념으로 주목된다. 「해안 지역 민간신앙의 용신龍神과 자연 이해」는 일반적으로 수신水神으로 알려진 해안 지역 용신의 위상을 재조명한다. 용신은 풍어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신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이 담당하는 특수한 기능은 수사자水死者의 관장이다. 인간은 용신을 일방적인 숭배와 기원의 대상보다는 자유롭게 소통하고 요구할 수 있는 인간과 가까운 존재로 여긴다. 이 연구는 해안 지역의 신 개념은 물론 삶과 문화를 이해함에 있어서 자연에 대한 인지모델 같은 자연 이해의 새로운 관점이 필요함을 제기한다. 「한국 무속 ‘표시 체험’대한 연구」는 한국 무속의 종교 체험 중 ‘표시 체험’에 주목한다. ‘표시 체험’은 내림굿 이후 무당의 무업 실천과 직결된 것으로, 무당들은 이를 소명으로 받아들인다. 이 글에서는 ‘표시 체험’의 사례들을 분류하고 해석의 측면에 접근한다. ‘표시 체험’은 무당의 운명적인 사제로서의 체험이자 한국 무속의 소통 방식의 하나이다. 또한, 무당과 손님 사이에서 중요한 소통 촉매로서의 의미와 역할을 해명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옹기공방에서 여성의 역할 변화」는 그동안 옹기 생산문화 연구에서 소외되었던 여성의 존재와 역할에 주목한다. 과거 옹기생산문화에서는 남성의 역할만이 조명·강조되었지만, 이 연구에서 주목한 것은 옹기장인 가족 특히 여성의 참여와 역할이다. 이를 통해 전통공예 분야는 생산이나 기술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장인의 생활문화를 아울러 이해해야 하며, 그와 관련된 생산문화의 다양한 측면을 고찰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하고 있다. 제3부는 지역 문화의 활용 가능성과 전망을 다룬다. 「밀양농악의 전승과 의의」는 1970년대 초에 만들어진 현대의 농악으로서, 고을농악이 갖는 탈공동체성과 뛰어난 치배에 의존한 전승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밀양농악이 현대의 민속 가운데 하나인 고을농악의 창출과 전승양상을 살필 수 있는 적절한 사례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80년대’저항 문화와 민속의 지역사회 귀환」은 영양댐 건설 계획에 따라 수몰될 위기에 처한 지역과 마을 공동체를 지킨다는 의미로 기획․실행된 장파천 문화제의 민속학적 의미를 다룬다. 이 글에서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복잡다단한 민속의 재구성 과정을 밝힘과 동시에, 지역사회나 농촌에서 민속이 지닌 대안문화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고향영화Heimatfilm에 대한 독일 Tübingen대학 민속학연구소의 연구 배경과 방법」은 고향에 대한 독일민속학자들의 인식적 특징, 대중매체 대한 연구 경향, 고향영화 장르의 유형 분류와 연구 방법을 제시, 분석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 고향은 실재의 공간이기보다는 고향을 떠난 혹은 도시에 사는 사람의 상상의 공간이며, 고향영화란 이들의 상상을 확인시켜주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민속’의 상품화’중 레트로 현상의 발생 배경 그리고 민속학의 연구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문경도자기의 기종과 정체성 변화」는 식기류를 주로 생산했던 문경지역의 사기장들이 20세기 후반부터 점차 새로운 기종을 만들게 된 사회문화적 배경과 과정을 해명하고 있다. 특히 사기장의 경험담을 중심으로 전통기술의 보존과 ‘만들어진’전통 상품이라는 두 요소가 어떻게 공존하면서 다면적인 정체성을 형성했는지 분석한다. 이 글은 다양한 환경 변화가 전통기술 보유자들에게 미친 영향과 그로 인한 정체성 변화를 당사자들 시각에서의 이해 가능성을 열어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발간을 위해 옥고를 제공해준 필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4단계 BK21사업을 통해 이 책의 출판비와 더불어 안동대 민속학과 대학원생들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해 준 한국연구재단에도 특별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성가신 출판 작업을 수행해 준 홍종화 사장님을 비롯한 민속원 관계자분들, 원고의 수합과 정리에 힘써준 이중구 박사와 서별 박사과정생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이 책을 통해 지역 공동체의 위기 진단과 대안 마련에 민속학이 조금이나마 기여하길 바라본다. 글쓴이 소개(집필순) 이영배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민속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공동체문화 실천의 역사적 원천과 그 재생의 특이성」("한국학연구", 2019), 「공동체문화 연구의 민속적 패러다임 정립을 위한 기획」("인문학연구", 2019), 「공동체문화 실천의 동인과 대안의 전망」("인문학연구", 2020) 등이 있다. 이진교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대학원 민속학과 4단계 BK21 교육연구팀장이다. 지역 공동체 현실문제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마을사회의 위기와 의례적 대응」, 「지역사회의 연대와 저항」 등의 연구논문과, "문화권력과 버내큘러"(공저), "현대화와 민속문화"(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이중구 안동대학교 대학원 민속학과 BK21교육연구팀에서 학술연구대우교수로 재직중이며, 주로 마을사회와 어촌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인접 마을 간의 관계성 변화」, 「어촌사회의 공공개발 수용과 환경 변화」, 「분단의 현실과 접경지역의 어민사회:고성군 현내면 대진리의 사례」 등이 있다. 배영동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농경문화, 음식문화, 지역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궁중 내농작과 농가 내농작의 의미와 기능」, 「산업화에 따른 마을공동체 민속의 변화와 탈맥락화」, 「고조리서 "음식졀조飮食節造" 저술의 배경 문화 탐색」 등이 있고, 저서로는 "농경생활의 문화읽기", "민속지식의 인문학"(공동) 등이 있다. 이용범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민속종교와 관련 의례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표 논저로 Korean Popular Beliefs(공저), "도시마을의 민속문화"(공저), 「한국 전통 죽음의례의 변화:유교 상장례와 무속의 죽음의례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정은정 안동대학교 대학원 민속학과 박사과정을 수료 후, 현재 무속 공동체와, 지역의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대표 논문에는 「한국 무속 종교 체험에 대한 연구-‘표시 체험’을 중심으로-」가 있다. 이한승 안동대학교 대학원 민속학과 BK21교육연구팀에서 학술연구대우교수로 재직중이며, 공동체 문화와 무형유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표 논저에는 "옹기를 만드는 사람들", 「1970년대 광명단 옹기에 대한 논란과 그 문화적 파장」 등이 있다. 한양명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민속예술과 축제, 놀이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대표 논저로는 "물과 불의 축제:선유․낙화놀이의 전통과 하회 선유줄불놀이", "용과 여성, 달의 축제:영덕의 동제와 대동놀이", 「민속예술을 통해 본 신명풀이의 존재양상과 성격」, 「솟대놀음의 변화와 놀음의 미학」 등이 있다. 이상현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요 논저에는 「독일 민속학개론서의 일상문화와 민속학연구소의 일상문화」, 「민속학의 공동체적 마을 인식의 특징과 문제점」, "世界遺産時代の民俗學" 등이 있다. 서 별 안동대학교 대학원 민속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장인들이 조직한 공동체의 문화와 무형유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표 논저에는 「20세기 후반 문경도자기의 기종과 정체성 변화」, 「문화정책과 장인조직으로 본 문경지역 도자기의 정체성 변화」 등이 있다.
-
세계유산 도산서원의 품격세계유산으로까지 지정된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찾은 게 몇 번쯤 될까? 손으로 꼽을 수조차 없을 정도다. 그러함에도 첫 번째 봉심(奉尋)만은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된다. 1980년 추향(秋享)이었는데, 초헌관(初獻官)으로는 퇴계 선생의 직손(直孫)인 백주(白洲) 이원윤(李源胤) 옹(翁)이, 상례(相禮)는 도산(陶山) 하계(下溪) 출신인 이윤항(李潤恒) 옹(翁)이었다. 진행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초성까지 참 좋았던 어른이었다. 안동대학교 한문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필자는 어떤 계기에서였는지는 모르나, 그 경건한 도산서원 향사에 ‘학생’ 신분으로 참사(參祀)하게 되었다. 같이 간 이로는, 고등학교 5년 선배인 권혁윤(전 안동과학대 교수), 한 해 선배인 박명철(전 고등학교 국어교사), 한 해 후배로 현재 안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임 중인 이성규 박사였다. 그때가 벌써 43년 전 일이다. 2023년 3월 12일 일요일, 도산서원에도 매화가 피었겠지? 싶어서 귀경을 잠시 미룬 채 서원으로 차를 몰았다. 혼자 ‘도산탐매(陶山探梅)’에 나선 셈이다. 예상대로 매화는 막 피기 시작했다. 도산서당(陶山書堂) 옆에 조성된 매화원은 물론 역락서재(亦樂書齋) 앞의 노거수(老巨樹)에도 어김없이 꽃은 피었다. ‘산다는 것은 꽃 소식을 듣는 일’이라더니, 와서 보니 ‘참 잘 왔다’였다. 퇴계 선생께서 남긴 "문 닫은 채 솔바람 듣고(松風關院聽), 눈 속 매화를 화로 낀 채 바라보네(梅雪擁爐看)”라는 선생의 싯구가 떠올랐다. 아직은 쌀쌀한 봄날, 아랫목이 그리울 때인지라, 도산서당 완락재(玩樂齋)의 아담한 방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선생께서 계셨다면 문을 열고 이렇게 막 핀 매화를 바라보고 계시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매설(梅雪)’은 눈을 맞은 채 핀 설중매(雪中梅)일 텐데, 그것을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옹로(擁爐)’ 즉 화로를 낀 채 본다는 표현은 신의 도움까지 받은 게 아닐까 싶었다. 숙종 때 이조판서에다 15년간 대제학까지 지냈던 옥오재(玉吾齋) 송상기(宋相琦, 1657-1723)가 퇴계시 가운데 더욱 맛을 느꼈다는 시이기도 하다. 이처럼 상쾌한 기분을 품고 선생의 유품을 전시한 옥진각(玉振閣)으로 걸음을 옮겼다. 늘 보아도 감명 깊었던 지극히 소박한 서기(書丌, 冊床)와 아울러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매화연(梅花硯)과 매화등(梅花燈)이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있었다. 이들 기물(器物)을 보는 것만으로도 선생을 뵙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유가 있어 시선을 다른 자료들로 옮겼다. 복제품들로 전시장의 대부분이 채워져 있었다. 사연이야 있겠지만,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진품(眞品)들에 눈길이 더 갔다. 영문으로 번역까지 된 안내문을 가만히 읽게 되었다. 퇴계 선생께서 편집해 조선 선비들의 필독서가 되었던 ‘회암서절요(晦菴書節要)’가 펼쳐져 있었다. 그 책 첫째 장 하단(下段)에 ‘도산서원(陶山書院) 상(上)’이라는 묵서(墨書)가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도산서원 광명실(光明室)에 소장된 책 가운데 한권 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를 소개한 안내문에는 "1561년 문인 황준양(黃俊良)에 의해 간행된 목활자본 15권 8책이다.”라고 되어있었다. 문제는 ‘황준양’이라는 표기다. 혹시 싶어 황금계(黃錦溪) 종손에게 확인해보니 그렇게 쓴 예는 없다고 했다. 오식(誤植)이다. 이어진 "선생의 수택본으로 곳곳에 비점(批點)과 주기(註記)가 있다”는 부분은 일견 완전해 보이지만, 첫째 장 상단에 주묵(朱墨)으로 주서(註書)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주기(註記)’는 ‘주기(朱記)’가 바른 표기일 듯하다. 문제가 있다 싶어 다른 안내문까지 이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퇴계서초(李退溪書抄)’다. "선생의 8대손 초초암공(草草唵公:泰淳)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김이교(金履蕎)에게 빌려 복사한 것이다. 10권 10책이다.”라는 것이었다. ‘초초암공’은 대사간을 지낸 ‘초초암공(草草庵公)’이 정답이고, ‘김이교(金履蕎)’는 우의정을 지낸 죽리(竹里) ‘김이교(金履喬)’이며 ‘복사’는 ‘필사(筆寫)’가 바른 표현이다. 그 옆에 있는 등경(燈檠) 설명문에는 "등잔을 엊어 놓던 등잔거리로서”라는 것에 ‘엊어’라고 오식(誤植)한 것을 진작 인지해서인지 ‘ㄴ’을 ‘수기(手記)’해 궁색하게 잘못을 수정해 두었다. 그러나 이 역시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도산서원의 품격에는 모두 어울리지 않는 잘못된 방식이다. 고식지계(姑息之計)다. 우리의 유산은 ‘세계유산 등재’를 자랑하는 것을 넘어서 이를 기리고 배워 후대에 이어주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오식을 오래도록 간과, 방치하고 있는 현실은 분명 문화재 당국이나 도산서원 관계자는 물론 필자를 포함한 관람객 모두에게도 등한(等閑)히 여겨 지나친 잘못이 없지 않다고 본다. 조속한 시일 내에 그 정오(正誤)를 살피고 가려서 바로잡아야 한다.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다. *고식지계 (姑息之計):임시방편으로 당장 편한 것을 택하는 꾀나 방법.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
-
한국민속학의 현상(現狀)과 과제, '민속학과 나'제47차 실천민속학회 전국학술대회의 주제는 '한국민속학의 현상(現狀)과 과제: 나와 민속학'이다. 실천민속학회 이진교 회장은 "민속학과 폐과와 명칭 변경이 상징하듯이 종언의 위기에 놓인 민속학이야말로 사회적 존립기반을 다시 점검해 학문의 정체성을 시급히 재정비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한국민속학의 현재 상황을 성찰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합니다."라고 전했다. 학술대회 일정 [ 02월 17일(금) ] 9:50~10:00 개회사: 실천민속학회장 이진교(안동대) 사회 이한승(안동대) 일반발표 사회 안승택(경북대) 10:00~10:50 광부들의 문화적 기억과 실천 : 문경 석탄박물관 전시를 중심으로 발표 정상빈(안동대) 토론 송준규(서울대) 10:50~11:40 근대화와 마주친 통일벼의 민속적 함의 발표 정갑진(안동대) 토론 이민재(한국학중앙연구원) 11:40~13:00 점심 식사 기획발표 1 사회 김정하(한국해양대) 13:00~13:50 ‘한국민속학 재고’란 무엇이었던가? 발표 남근우(동국대) 토론 한양명(안동대) 13:50~14:40 나의 민속학 : 변변찮은 동반자 혹은 불편한 내부자 발표 권봉관(농촌진흥청) 토론 강석훈(국립무형유산원) 14:40~15:30 무속연구자가 본 민속학의 현상과 과제 발표 홍태한(전북대) 토론 이용범(안동대) 15:30~15:40 휴식 기획발표 2 사회 정수진(대학교육협의회) 15:40~16:30 민속학도의 현실과 이상 : 개인적 경험을 중심으로 발표 김승유(국립민속박물관) 토론 권혁희(강원대) 16:30~17:20 민속학의 연구 주제 다양화와 방법론의 환기 발표 김연수(한국학중앙연구원) 토론 유승완(중앙대) 17:20~17:50 종합토론 17:50~18:00 폐회사 : 실천민속학회 부회장 안승택(경북대) 제47차 실천민속학회 전국학술대회는 온라인으로 개최된다. 학술대회의 온라인 링크는 다음과 같으며, 행사 당일인 2023년 2월 17일 오전 8시 50분부터 접속 가능하다. (Zoom 회의 참가) https://us02web.zoom.us/j/5861745500?pwd=NENiSXRLZWdpaDNTbWZ0YjdHNm55UT09 링크를 통한 입장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아래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시면 참가할 수 있다. (회의 ID: 586 174 5500 - 암호: dsZE3A) 제47차 실천민속학회 학술대회의 자료집은 2월 15일 이후 실천민속학회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연락처는 실천민속학회 학술행사 관련 문의는 학회 메일 silchunms@gmail.com 실천민속학회(초대회장:임재해)는 1997년 창립 이후 민속학 연구와 관련된 다양한 기획주제로 민속학 학술 담론의 장을 주도해 왔다.
-
한국국악협회 대구광역시지회 제21대 김신효 지회장 재선지난 14일(14시) 영남일보사 대강당에서 치러진 (사)한국국악협회 대구광역시지회(이하 대구국악협회) 제61차 정기총회에서 김신효 지회장이 연임으로 재선되었다. 대구국악협회는 대의원 총회로 진행되며 전체 유권자 수 101명의 선거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선거는 김신효 지회장 단독 출마로 진행되었으며 대의원 전체 추대로 연임에 성공했다. 김신효 지회장은 안동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학위(민속학 전공)를 취득하였다. (사)한국문화공동체 BOK 대표를 역임하고, 무형문화연구원 연구교수와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 모니터링 연구책임자로 활동하며, (사)대구국악협회 제20대 지회장으로 지난 4년간 대구국악협회를 이끌어 왔다. 김회장은 지난 4년간 대구국악협회장으로 대구국악제, 대구전국사물놀이경연대회, 예술강사지원사업 등 대구국악협회의 정기적인 사업뿐 아니라 대구국제전통북페스티벌 개최, 코로나시기 국악인들을 위한 언텍트공연, 젊은 국악인들의 활동무대를 넓히기 위한 퓨전국악 축제 등을 유치했으며 중장기사업으로 국악전용극장 건립을 위한 국제심포지엄 개최 등 대구국악협회의 현안을 해결하려 노력해 왔다. 김회장은 당선 소감에서 전용극장 건립 등 중장기사업 추진에 있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아쉬운 소회를 밝히며 지속적인 추진을 약속하고, "대구국악협회가 전통문화예술의 중심이 되기를 기대한다. 회원들의 행복한 예술 활동 지원과 협업과 동참을 통한 국악 활성화 사업추진에 역점을 두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신효 지회장의 임기는 2026년까지이다.
-
설·추석 '명절 세시풍속'도 국가무형문화재 된다설, 추석 등 명절 세시풍속이 올해 국가무형문화재가 된다.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명절 분야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관련 자문회의’를 열고 설, 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을 세부지정 목록으로 선정하고 이 5개 목록을 동시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이에따라 문화재청은 오는 7월까지 명절국가무형문화재 종목 지정가치 연구용역을 추진한다.문화재청 관계자는 "다음주에 분과 위원회가 열리면 올해 이 계획을 보고한 뒤 결정되면 연구용역을 진행한다"며 "올해 일정상 9월에 위원회가 명절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하면 11월 중에는 명절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추석은 2021년 12월 국가무형문화재 지정가치 조사 연구용역 결과, 국가무형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추석은 순수한 우리말로 한가위라 부르며, 다른 말로 가배, 가배일, 가위, 한가위, 중추, 중추절 등이 있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 유리이사금조 9년 기록을 통해 추석은 적어도 삼국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이어져 온 것을 알 수 있다.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자문회의에 참석한 배영동 안동대 문화유산학과 교수는 "명절 세시풍속은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며 개인화되는 오늘날에도 한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을 지탱해주고 있는 전통”이라며 "현재는 그 의미가 옅어지고 있지만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통해 다시 공동체 가치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명절 세시풍속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 보유자·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전승 공동체 종목으로 지정된다. 아리랑, 씨름. 김치 담그기, 제염, 온돌문화, 막걸리 빚기, 갯벌어로, 한복생활, 윷놀이 등 총 16개 종목이 지정됐다.
-
국립민속박물관, '민족과 이주' 18~19일 국제학술대회국립민속박물관과 비교민속학회가 '민족과 이주'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를 오는 18~19일 개최한다.민속 관련 한중일 3개국 전문가들이 이주에 대한 연구성과를 공유하고, 세계화 과정 속 민속적 동질성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서울 종로구 민속박물관 대강당과 민속박물관 전통문화배움터에서 진행된다.첫째 날에는 아시아의 여러 사례를 통해 떠나온 고향에 대한 문화적 인식을 공유한다. ▲티베트 난민의 이동과 인도 다람살라의 성지화(편설란·일본 나라대) ▲중국 동북부 지역 인구가 적은 소수민족들이 공유하는 곰 신화 연구(왕리쩐·중국 중앙민족대)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의 가족공동체와 음식문화의 혼종성(박선미·안동대) 등의 발표가 진행된다.둘째 날에는 하나의 민족공동체가 타지로 이주하고 다양한 문화적 집단이 공존하는 상황을 음식 문화 관점에서 고찰한다. ▲카자흐스탄 한인 디아스포라 음식문화의 접변과 혼종성(배영동·안동대) ▲재일코리안의 음식 세계와 정체성(아사쿠라 토시오·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 등을 발표한다. 한민족은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타지로 이주하여 고려인, 조선족 등의 민족 집단을 이루어 거주하고 있으며, 반대로 국내에도 다양한 이유로 이주해온 외국인이 집단적으로 체류하고 있다. ‘민족과 이주’ 국제학술대회는 민족적 경계가 점차 불분명해지고 다양한 문화적 집단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온·오프라인 양방향으로 진행될 예정으로, 국립민속박물관 현장 참여와 온라인 화상회의(Zoom) 참여가 가능하다. 생중계는 국립민속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
[학술] 세계판소리협회 발대식 및 제1회 학술대회사단법인 세계판소리협회(이사장 채수정)는 오는 9월 24일(토) 호텔 스카이파크 킹스타운 동대문점 킹스홀(14층)에서 10시부터 18시까지 ‘(사)세계판소리협회 발대식 및 제1회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사)세계판소리협회는 판소리 세계화와 대중화를 목표로 설립되었다. 1934년 김창환 명창이 이끈 조선성악연구회, 1971년 박록주 명창이 이끈 (사)판소리보존회는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판소리를 지켜내고 발전시키고자 했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설립되었다. (사)세계판소리협회 역시 21세기 국악 한류의 흐름 속에서 판소리의 세계화와 대중화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이자,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채수정 이사장을 중심으로 발족하였다. (사)세계판소리협회 이사장 채수정은 "그동안 많은 단체가 판소리의 보존과 전승에 애써왔다. (사)세계판소리협회의 사명은 이런 노력과 더불어 인류무형문화유산 판소리의 지속가능성과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이어서 "제1회 학술대회는 '판소리 세계화'와 대중화의 목표를 나아가는 첫걸음이자 출사표다”라고 말했다. 또한 "2023년은 판소리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 꼭 20년 되는 해이다.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판소리 세계화의 미래 20년 발전 전략이 수립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포부 밝혔다. 아울러 "실력 있는 젊은 소리꾼들이 세계를 무대로 꿈을 펼칠 수 있는 좋은 미래 비전이 제시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덧붙였다. (사)세계판소리협회의 발대식과 제1회 학술대회는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부 (사)세계판소리협회 발대식과 2부 학술대회 '판소리 세계화의 현황과 미래 전략'이 진행되며, 3부 축하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제1부 발대식은 (사)세계판소리협회장 채수정의 협회 소개와 신영희 명창(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의 축사와 공연으로 구성되었다. 2부 학술대회에는 파트 1 ’판소리 세계화를 위한 실천‘, 파트 2 ’판소리의 미래와 전망‘ 파트 3 ’종합토론‘으로 구성되었으며, 국내 최고의 국악·판소리 학자들이 모여 열띤 토론과 다양한 판소리 미래 전략을 선보일 예정이다. 학술대회는 좌장 주재근 ((사)공연전통예술미래연구원)의 진행으로 ‘한국 판소리 공연의 해외 진출의 과거와 현재’를 패널 최동현 (군산대), 신호림 (안동대), 초청자 김희선(국민대)과 해외공연으로 주목받고 있는 판소리 창작그룹 <입과손스튜디오>를 초청해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연구발표는 송미경(항공대)의▲판소리 세계화의 궤적 : 1960~2010년대 해외공연 사례 발표를 시작으로 ▲판소리 세계화를 위한 문화 기획 : 프랑스와 판소리, 그리고 한국소리 (K-Vox) 페스티벌의 역할 (한유미, K-VOX Festival) ▲판소리 세계화를 위한 교육 현장 : 유럽 현지 판소리 강습 사례를 중심으로 (민혜성, 한양대) ▲우리는 무엇을 판소리라 부르는가? (서유석, 경상국립대) ▲판소리 발전을 위한 전략과 전망 1 (Anna Yates-Lu, 서울대) ▲판소리 발전을 위한 전략과 전망 2 (최혜진, 現 판소리학회장)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종합토론에는 좌장 정병헌 (前 판소리학회장), 성기련 (서울대), 임상규 (안산시립국악단), 전인삼 (전남대), 장재효 (관현맹인전통예술단), 조세린 (배재대) , 정충권 (충북대)이 참여한다. 3부 축하공연에는 전통과 창작 판소리, 외국인 소리꾼들의 판소리 공연을 선보인다. 명창 유영애(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 전인삼(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과 고수 박근영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의 전통 판소리와 소리꽃 가객단의 창작 판소리가 어우러질 예정이다. 또 소을소리판의 외국인 판소리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사)세계판소리협회의 발대식과 제1회 학술대회는 국악인, 연구자, 판소리와 국악을 사랑하는 시민 누구나 참가 가능하며, 참가 신청은 (사)세계판소리협회 홈페이지(www.wordlpansori.com)를 통해 가능하다.
-
박보균 장관 "지역차별 없는 문화 환경 만들 것"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0일 "국민이 지역과 관계없이 공정하고 차별 없는 문화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박 장관은 이날 저작권보호과 서울사무소 회의실에서 지역문화협력위 첫 회의를 갖고, "대한민국이 문화 매력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경쟁력과 차별성, 독창성의 바탕인 지역 고유문화의 가치와 매력을 찾아서 정교하게 브랜드화해 지역이 골고루 번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며 이같이 밝혔다.지역문화협력위원회는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른 법정위원회로,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 수립과 지역문화 균형발전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하고 정책 자문을 맡는다. 위원장은 문체부 장관과 위원회에서 호선된 민간위원이 공동으로 맡는다. 4기 협력위원회는 민간위원 14명과 문체부 장관, 문체부 지역문화정책관 등 16명으로 구성된다. 문체부는 각 부처, 지방자치단체, 유관 공공기관·단체 등에서 후보를 추천받아, 분야별 전문성과 지역별 대표성 등을 검토해 최종 민간위원 14명을 선정했다.이날 위촉된 민간위원은 ▲임학순 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 교수(위원장) ▲김기곤 광주전남연구원 광주총괄지원연구관 ▲김시범 안동대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교수 ▲박상언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장 ▲백현주 동아방송예술대 창의융합교양학부 초빙교수(부총장) ▲서수정 건축공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오동욱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 ▲오재환 부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윤소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선옥 의재미술관 관장 ▲이선화 제주도 문화협력위원회 위원장 ▲장세길 전북연구원 연구위원 ▲정상철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재관리학과 학장 ▲최인숙 강원디자인진흥원장이다.위원들은 이날 회의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문화의 가치를 강조하며 지역에서 인구감소, 지역소멸 등 문제에 대해 문화정책을 통한 적극적 대응을 요구했다. 또 새 정부의 지역문화정책 핵심 과제로 문화 취약 지역에 대한 우선 지원을 강화하고 문화 매력 지역의 선도지역 육성과 브랜드화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지역 내 문화 '일거리'는 있지만 지속가능한 '일자리'는 부족하다"며 문화인력 양성과 재교육 시스템 마련, 문예회관 등 문화시설을 활용한 문화교육 프로그램 확충을 문화 수요 확대 방안으로 제시했다. 이들은 "중앙부처와 광역·기초 지자체 간 협력관계 구축과 적극적 소통이 중요하다"며 "지역문화 균형 발전을 위해 지역 간·부처 간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고 했다.이에 대해 박 장관은 "문화는 상상력이 충돌해서 경쟁하면서 승부를 보는 공간"이라며 "지역 고유문화와 상상력과 열정이 조화를 이루어 뿜어내는 콘텐츠가 정책 당국과 지역 주민, 국민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학술] 이애주 교수 추모기념 학술대회고(故) 이애주 선생 1주기를 추념하는 출판기념회와 우리춤에 대한 고인의 고민과 예술철학을 헤아려보는 ‘학예굿’이 오는 27일 과천 이애주문화재단에서 열린다.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의 예능보유자인 이애주 선생은 시대의 춤꾼이면서 우리 춤에 대한 독창적인 사유를 한 깊이 있는 연구자다. 2019년 9월부터는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을 맡았다. 내일 27일 오후 2시부터 이애주문화재단에서 이애주 저서 3책 출판기념회를 하고, 이어서 3시부터 이애주춤을 주제로 학술발표회를 한다. 학예굿의 첫째 마당은 학술발표로 ▲임재해(안동대 민속학과 명예교수)의 ‘이애주춤의 현장성과 변혁적 운동성’ ▲문무병(제주신화연구소 소장)의 ‘이애주의 춤과 제주 4·3 차사영맞이’ ▲김익두(전북대 국문과 명예교수)의 ‘이애주춤과 남학’ ▲채희완(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명예교수)의 ‘초기 이애주춤의 활동상과 예술선언’ ▲조경만(목포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의 ‘이애주춤과 세상’ ▲김연정(제자, 한예종 겸임교수)의‘이애주 선생의 춤 활동과 예술정신의 배경’ 등이 주제 논문을 발표한다. 발표 후 정병훈 국립경상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자유토론을 이어간다. 둘째 마당은 예술행사로 한국전통춤회와 한국민족춤협회가 선생의 ‘영가무도’, ‘바람맞이’를 각각 재현한다. 또한 풍물굿패 삶터의 한판 풍물굿, 창작판소리연구원의 소리 공연도 예정돼 있다. 마지막은 집들이 마당으로 이애주 선생의 유품과 자료를 함께 둘러보고, 음식을 나눠 먹는 ‘나눔과 돌아봄’으로 행사를 마무리한다. 임진택 이애주문화재단 상임이사는 "‘학예굿 이애주 춤’은 지난 2012년 이애주 선생의 서울대학교 퇴임기념 학예굿 ‘한국춤의 생성론과 이애주의 춤세계’에 이어 두 번째 치러지는 행사”라며, "앞으로 몇 번의 학예굿을 거쳐 주제발표 논문들을 모아 선생에 대한 평론집을 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첫번째 발표는 임재해 교수의 ‘이애주춤의 현장성과 변혁적 운동성’이다. "이애주춤은 무대춤으로서 구경꾼에게 보여주는 공연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춤이 필요한 현장을 찾아가 춤추는 현장춤이 특성이다. 거시적으로는 사회체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정치적 변혁과, 미시적으로는 서양춤에 경도된 무용계의 모순을 우리춤 운동으로 극복하는 변혁적 운동성을 지향한다. 따라서 이애주의 현장춤은 인간해방을 지향하는 해방춤이자 구경꾼과 함께 춤추는 '대동춤'이라 사실을 집중적으로 밝힌다".(임재해)
-
운강 이강년 의병대장 학술대회 자료집 발간운강이강년의병대장기념사업회(회장 이영범)가 ‘운강학술대회발표논문자료집’을 발간했다. 지난해 10월 15일과 16일 문경문화원 다목적실, 문경새재라마다호텔에서 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문경시-문경시의회-경북북부보훈지청-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성균관문경청년유도회가 후원해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엮은 것이다. 책에는 김희곤 안동대학교 명예교수의 ‘문경의 독립운동과 의병’을 시작으로 신진희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사의 ‘이강년 의진을 통해본 동학농민군과 의병의 상관관계’, 이에 대한 신영우 충북대학교 명예교수의 토론문, 강민구 경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의 ‘의병장 이강년 격문류(檄文類)의 가치와 의미’, 이에 대한 우지영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의 토론문, 김항기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의 ‘이강년의진 참여자의 판결양상과 내용’, 이에 대한 최보영 용인대학교 교수의 토론문, 김성진 의암류인석기념관 학예연구사의 ‘독립운동사적지(기념관) 기억과 기념 어떻게 할 것인가-의암류인석유적지(기념관) 운영사례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엄원식 문경시청 문화예술과장의 토론문이 1부 자료로 실렸다. 이어서 이성우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장의 ‘이강년의진에서 활약한 인물의 1910년대 이후 항일투쟁’, 이에 대한 강윤정 안동대학교 교수의 토론문, 심철기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의 ‘운강 이강년의병장 자료현황과 과제’, 이에 대한 원재영 연세대 강사의 토론문, 이광현 성주고등학교 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항일 의병운동 서술 현황과 과제-주요 의병장에 대한 서술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조철호 경상북도교육청 중등교육과 장학사의 토론문, 김연갑 아리랑학교장과 기미양 아리랑학회 이사의 ‘문경 의병과 아리랑’, 이에 대한 권갑하 시인의 토론문이 실렸다. 부록으로는 ‘격고각도열읍(檄告各道列邑)’, ‘이승재(운강의 큰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통고문’, ‘취정록’, ‘송상도의 기려수필에 기록된 운강 이강년’, ‘유방집’을 실었다. 운강이강년기념관 자료총서 2집으로 펴낸 이 책은 가로 19.8cm, 세로 27.2cm의 크기에 320쪽을 두꺼운 표지로 둘러싸 엮었다. 이영범 회장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밝히는 지표는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일어섰던 운강 선생이 남기신 의로운 삶의 정신”이라며, "이 민족, 이 나라의 올바른 길을 열어주는 선생의 정신을 문경에서부터 열어 전국으로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
[학술단신] 2021년도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동계학술대회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회장 손정훈, 아주대) 동계학술대회 및 정기총회가 개최된다. 주제는 ‘지역소멸과 문화콘텐츠’, 2021년 12월 11일(토) 12:00, 온라인으로 개최된다. 태지호(안동대)·김소라(한국문화관광연구원)·임동욱(한국외대)·김필립(경상국립대)·백해린(한국외대)·이건웅(글로벌사이버대)·이웅규(안동대)·이유나(한국외대)·이재민(대전세종연구원)·신호림(안동대)·방미영(서경대) 등이 참여한다.
-
[학술계 단신] 제3회 경기학 학술대회경기학 학술대회가 오늘과 내일 온라인 줌으로 개최되고 있다. 경기학회 주관, 민속기록학회 외 5개 단체가 공동 주최로 2일 간 개최 중이다. 이번 대회 주제는 ‘경기만 평화번영과 해양문화공동체 구축’이고, 4섹션과 분과학회 색션으로 개최된다. 민속기록학회 주제는 ‘경기도 민속 기록’이고, 발표 논문과 발표자는 다음과 같다. 1. 경기도도당굿 문화재 보유자 오수복에 대한 기록(김덕묵-한국민속기록보존소장) 2. 무형문화를 통한 공동체 문화의 지속(유수영-우리문화콘텐츠연구소 책임연구원) 3. 구술사로 바라본 광명지역의 한국전쟁(성치원-안동대학교) 좌장과 토론 진행은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가 맡는다.
-
확장 가상 세계에서 전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한국문화 콘텐츠 발굴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문화정보원과 함께 10월 20일(수), ‘제1회 한국문화 체험 메타버스 콘텐츠 아이디어 공모전’ 시상식을 온라인으로 개최한다. 확장 가상 세계(메타버스)는 가상 인물(아바타)을 통해 일상생활과 경제활동 등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인터넷 환경으로서, 최근 공연, 축제, 전시 등 문화 분야로 확장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확장 가상 세계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이용자들이 다양한 주제와 내용으로 콘텐츠를 생성하고 있으며,이는 곧바로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문체부는 확장 가상 세계를 활용해 한국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지난 7월 12일(월)부터 9월 17일(금)까지 ‘한국문화 체험 메타버스 콘텐츠 아이디어 공모전’을 처음 진행했다. 이와 함께 공모전 기간 중 국민 참여 누리집인‘광화문 1번가’에서 ‘확장 가상 세계 속에서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응답자 1,142명 가운데 가장 많은 837명(73.3%)이 ‘문화’ 활동으로 답해 문화콘텐츠 수요가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첫 번째 공모전에서는 다양하고 참신한 공모작 총 90건을 접수했으며, 심사를 통해 총 10개의 수상작을 선정했다. 대상은 케이팝을 주제로 ‘가상 댄스 스튜디오’를 구현한 ‘원밀리언 메타버스’팀이 차지했다. ‘원밀리언 메타버스’팀은 ‘가상 댄스 스튜디오’를 통해 이용자들이 안무 창작과 연습, 가상 인물 3차원으로 꾸미기 등을 체험할수 있는 콘텐츠를 제시했다. 최우수상은 우리나라 전통예술 공연을 주제로 ‘장구 인 더 클럽’을 기획한‘아트사물노리’팀이 받는다. 우수상은 ▲ 한글과 한국어 보급을 목적으로 전시관 형태의 콘텐츠를 제작한 ‘㈜인포플랫폼’팀과 ▲ 우리나라 조선 시대내의원을 체험하는 역사 게임 콘텐츠를 제작한 ‘정3품’ 팀이 받는다. 이 밖에한국문화를 확장 가상세계에서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콘텐츠를중심으로장려상 3팀과 특별상 3팀을 선정했다. 수상팀에는 상장과 함께상금총 1,200만 원을 수여할 예정이다. 이번 온라인 시상식(10. 20.)은 ‘문화공공데이터 활용 창업경진대회 시상식*’과 함께 열리며, 참석을 희망하는 사람은 10월 19일(화)까지 누리집(https://event-us.kr/yuuu/event/37408)에서 신청하면 된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이번 공모전을 통해 확장 가상 세계 안에서 체험할수 있는 한국문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리고, 수상팀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한국문화 콘텐츠로 더욱 발전하기를 바란다.”라며 "앞으로도 확장 가상 세계를 활용해전 세계에 한국문화를 알리는콘텐츠를 발굴하고 제작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
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 36세시풍속과 지역축제 분야 이론가 김명자교수 ‘국악신문’의 창간으로부터 100호를 맞는 기간은 가히 ‘한국은 축제의 나라’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전후하여 시작된 지역축제 붐은 1994년 ‘국악의 해’를 정점으로 관심을 고조시켰고, 새 세기를 맞는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국을 축제의 공간으로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1958년 시작되어 서울에서만 개최하던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全國民俗藝術競演大會)가 20주년을 맞아 전국 중소도시 순회 개최로 확대되면서 지역축제의 열풍을 가속시켰고, 1996년 이의 실상을 기록한 ‘한국의 지역축제’가 발간되었고, 1999년에는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공동주최하면서 이름도 ‘한국민속예술축제’로 안착되는 과정에서 확인된다. 이러한 판도를 '국악신문'도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바로 100호 기념 편집진용 구축에 지역축제 전문 자문위원으로 민속학자 김명자 안동대 국학부(당시 국립대학교 수칙으로 민속학과 교수가 아닌 국학부 민속학 전공교수였음) 교수의 위원 선임이다. ‘국악신문’ 제99호 <위촉 편집위원>에 ‘민속축제 부문 김명자(안동대 국학부 교수)’로 호명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 필자로 참여하던 김연갑(아리랑연구가)선생에 의하면 "당시 초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상황을 서울신문 기자로서 취재하고, 민속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의 지역축제’ 공동 저자로 참여하여 추세를 파악하고 있고, 필드 워크가 강한 분으로 다양한 분야의 자문을 얻을 수 있는 안동대 김명자교수가 꼭 필요했다. 특히 지역축제의 바탕인 세시풍속 연구자여서 더욱 그랬다.”라는 증언에서 김교수의 선임 의미가 컸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김교수는 ‘한국문화의 원본사고’라는 공동 집필 연구서에서 한국의 민속, 특히 무속 현상을 분석하여 한국인의 존재에 대한 원질적 사고의 틀을 추출·정리한 ‘원본사고(原本思考= Arche-Pattern) 이론’을 세시풍속의 순환체계에 적용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이 연구는 스승인 경희대 김태곤 교수의 원본사고 이론을 적용, 세시풍속 연구로 확장시킨 것이다. 김명자(金明子/1945~ ) 교수는 이화여대에서 신문학(新聞學 공부하고 서울신문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출발했다. 기자로 활동하며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을 전공하면서 임동권 교수의 지도로 세시풍속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민속학회에 가입하고 민속학자 남강(南剛) 김태곤(金泰坤, 1936〜1995)교수를 만나 다시 경희대학교로 옮겨 민속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안동대 민속학과 교수, 안동대 인문대학장 및 박물관장, 민속학연구소장, 실천민속학회 회장, 한국민속학회 부회장, 한일종교연구포럼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안동대 명예교수로 있으며, 문화재청·경상북도·인천광역시 문화재위원, 한국공연예술원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세시풍속’I·II(2005·2007), ‘연아 연아 올라라’(1995), ‘되는 집안은 장맛도 달다-전통의 멋과 슬기’(1994) 등이 있다. 공편저로는 ‘한국의 지역축제’(1996), ‘전통노들제굿연구’(2010), ‘민속문화의 조명과 새 지평’(2007), ‘한국의 가정신앙’ 상·하(2005), ‘한국민속학개론’(1998), ‘한국의 점복’(1995) 등 50여권에 있다. 또한 2003년부터 10여년을 두고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 무형문화재를 중심으로 한 민속 역사 관련 각종 학술활동과 함께 민속자료 보존, 평가와 감정 등의 분야에서 대표적인 전문가 겸 학자로 참여해 왔다. 또한 문화재청 규제개혁위원장도 역임하여 전통문화 분야 정책 개발과 운영에도 기여했다. 안동대학교에서 박물관장, 민속학연구소장, 인문대학장 등을 거쳐 정년을 한 후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수집, 소장하고 있는 북한의 민속학 분야 연구자료를 분석하여 요약, 해제(解題)하는 활동을 했다. 이 연구는 공동 작업으로 북한 및 중국 동북지역 문화유산 종합학술연구”의 일환으로 북한 고고학 정기간행물인 ‘조선 고고연구’, ‘문화유물’, ‘문화유산’, ‘고고민속’ 등 폐간된 간행물에 수록되어 있는 민속학 분야의 자료와 논문을 요약하고 해제하는 작업이다. 이 결과로 2017년 ‘조선고고연구 해제집’ 1권(46배판, 976쪽)과 2권(46배판 1167쪽)으로, 2018~2019년 102편의 자료와 논문을 요약, 해제한 ‘력사제문제 · 문화유산· 문화유물·고고민속 해제집’ (46배판, 928쪽)를 출간했다. "이념을 떠난 순수한 학술적 의미와 가치가 인정되는가”라는 회의 속에서 시작한 지난한 작업이 우뚝한 실적을 낳은 것이다. 김교수는 동명이인이 많은 ‘김명자’라는 이름 대신 한 한학자로부터 받은 이호(雅號) ‘호정(昊亭)’을 즐겨 쓰며 "여름 하늘 아래 지은 정자에서 많은 사람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바램으로 살고 있다.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부에서의 진술은 여운을 준다. "반만년이라는 긴 역사를 이끌어 온 우리 민족사에서 삶의 숨결인 전래 민속문화와 민속학의 학문적 연구는 결코 단순하지도, 가볍지도 않다. 사라진 것을 찾아내 기록으로 보존하고 현존하는 것을 현대문화에 맞게 계승발전시키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 한동안 보유자(속칭 인간문화재), 무형문화재 평가 심의에 참여해 많은 분들과 거북하기도 했지만 사실상 나는 그들과 업무 이외에는 개인적으로 만나지도 않고 대충 넘어가지도 않으니 원칙주의 고집이 환영 받을 리가 없다. 그러나 국가가 검증하고 인정하는 전수자라면 반듯하게 전통 기량을 갖추어야 당당한 것 아닌가. 민속문화는 시대에 맞게 변해도 타고난 골격의 품격은 유전인자처럼 제대로 이어져야 한다.” 김명자교수는 ‘국악신문’ 발전에 함께한 편집위원이다. ‘국악신문’ 역사의 증인이며 기여자이다.
-
(37)<br>‘2005’의 아리랑<11> <br>정선의 아라리 기층(1)어떤 특정 민속(민요) 현상의 출처 또는 발상지를 알 수 있을까? 예컨대 민요나 아리랑의 발상지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느냐라는 말이다. 이에 관심을 품은 이들은 1세대 국학자들이다. 최남선은 민요의 역사를 "주몽의 고개를 넘어 단군의 마루턱에 나아가도 민요의 하늘은 계속되고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최영한(崔永翰)도 그 시원이 무한함을 기술하였다. "붉은 땅에 푸른 풀이 싹 돋는 조선에 있어서 반만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조선인의 원시적 생활이 또한 그러하였을 것도 사실인즉 조선 민요의 역사는 조선민족 생활의 최초로부터 시작하였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민요의 시원을 민족의 시원에 닿아있다고 하였다. 민요 아리랑의 출처를 언급한 이는 민요 학자 고정옥(高晶玉,1911~1969)이다. 그는 1946년 ‘朝鮮民謠硏究’에서 아리랑의 출처가 있다는 전제로 기술했다. 즉, 아리랑이 "최초 단 한 개의 멜로디에서 출발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것이 시일의 경과에 따라 각 지방의 음악적·사상적·언어적 특징에 물들어 경기·서도·강원·영남 등의 각종 아리랑이 생긴 것.”이라고 하였다. ‘단 한 개의 멜로디’가 출현한 곳을 아리랑의 출처(출현지)라고 돌려 말하였다. 이후 역시 민요학자 임동권(任東權/1926~2012)도 1964년 ‘한국민요사’에서 "아리랑타령이나 도라지打令 같은 곡조는 일조일석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취사선택되어 집단의 공감을 주는 것으로 정립되어 오늘날의 민요가 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아리랑의 ‘멜로디’ 또는 ‘곡조’가 출현한 곳을 출처라고 한 것이다. 아리랑 관련 자료가 집대성된 1980년대 중반 아리랑연구가 김연갑은 1986년 ‘아리랑’에서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하였다. 소위 ‘도너츠 이론’인데, 민속현상의 출처를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호수에 처음 낙하물이 떨어져 파장을 일으키면 그 영향으로 물가에 모래톱과 같은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처음 충격이 있었던 곳의 흔적은 사라져 버려 찾을 수 없다. 이는 마치 처음 밀가루 덩이에서 눌러 구멍을 내고 이를 늘려서 도너츠 모양을 만들면 처음의 밀가루 덩어리는 없어지는 것과 같다. 아리랑도 어딘가에서 출현하여 오긴 했지만, 그 처음의 출현지를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문화인류학자 메롤로 몽타(Merleau-ponty. M)는 또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전승문화는 기원에 대한 망각을 수반한다.”는 주장이다. 원인은 다르지만 역시 출현지를 찾기 어렵다고 한 것이다. 곧 민요, 또는 아리랑의 기원을 찾는 것은 어렵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까지도 강원도 정선군민들이나 일반인들은 물론, 일부 학자들도 "아리랑의 고향은 정선이다.”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고 되었다. 말하자면 정선지역이 아리랑의 출처라고 한 것이다. 과연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인가? 앞서 살핀 대로 누구도 명확한 근거를 댈 수는 없다. 다만 일부 연구자는 전파론을 들어 ‘정선 아라리→ 서울경기아리랑→ ’ 식의 계통도로 설명하였다. 정선에서는 "정선의 뗏목꾼들에 의해 서울로 전파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그 하나이다. 그러나 이 전파론은 오늘의 문화인류학계에서도 크게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하는 이론이다. 예컨대 ‘강강수월래’의 경우 해남과 진도를 출처로 하여 경북 해안의 ‘월월이청청’이나 내륙의 ‘안동놋다리밟기’로 전파되었다고 보았다. 이는 1985년 영남대 김택규교수가 ‘한국농경세시의 연구’에서 한 주장이다. 그러나 1992년 안동대 임재해 교수는 ‘강강술래와 놋다리밟기의 전승양상과 문화적 상황’이란 논문에서 이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원무(圓舞)와 여성의 가무놀이의 통시적/공시적 보편성 등을 들어 이는 "인류 보편적 의식과 주술적 관념 속에서 저마다 생성된 것”이라는 ‘다원발생설’로 반박한 것이다. 합리적인 반박이다. 아리랑 역시도 메나리토리 노래가 발생될 여건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한 산악지대 곳곳이 공통으로 지닌 것이었다. 이 때문에 메나리토리 노래의 출처를 특정할 수 없는 실정이다. 다만 현재의 전형성을 근거로 ‘전승 중심지’ 또는 ‘전승 주변지’로 삼을 수는 있는 것이다. 즉, 기층성을 파악하여 중심지와 주변지로 구분할 수는 있다는 말이다. 이를 적용하면 정선지역 일대가 ‘아라리’의 전승 중심지이고 영월 평창 태백 강릉 지역이 전승 주변지역이 되는 것이다.
-
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 30지면 전문화 안착에 기여, 양종승 박사(上) 신문과 방송은 소위 계기특집(契機特輯)을 중시한다. 역사적이거나 국가적인 기념일에 대비하는 특별 취재나 편성물이거나 , 자사 창립 또는 창립자 관련 기념일 특집이 대표적이다. 대개는 5 내지 10년 또는 회차(回次) 단위의 정주년(整週年,꺾어지는 해)에 하는 경우가 많다. 「국악신문」도 100호를 기념하여 지면 전문화를 단행하는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당연히 100호를 맞는 감회와 더불어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기념사는 물론 편집위원을 대폭 확충, 위촉하고 지면을 전문화하는 혁신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전문 편집위원 위촉은 국악 전문지로서의 안착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악신문」 역사에서 ‘안착기’로 획정하는 기점을 바로 제100호 발간으로 보는 이유이다. 이의 정황은 2000년 11월 20일자 제99호 <위촉 편집위원>이란 10면 기사에서 확인 된다. 이것이 100호 기념 특집기사의 시작인 셈이다. "국악신문사에서는 국악 및 전통문화 발전을 모색하고자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편집위원들을 위촉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이제까지 실어 오던 소식과 국악계 동정기사만이 아닌 국악과 학문, 국악계 비전을 제시하는 신문으로서 발돋음 하고자 합니다.” 이런 취지로 위촉한 전문분야 편집위원 면면은 다음과 같다. 기존의 편집위원에 소속과 직함만을 밝힌 것과는 다르게 전문 분야를 강조하였다. 민요(농요) 부문 이소라(문화재청 전문위원)/ 민속무용 부문 이병옥(용인대 무용학과 교수)/ 민속축제 부문 김명자(안동대 국학부 교수)/ 판소리 부문 설성경(연세대 국문과 교수)/ 아리랑 부문 김연갑(아리랑보존회 이사장)/ 민속극 부문 전경욱(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 기악 및 고법 부문 정회천(전북대 한국음악과 교수)/ 무속 부문 양종승(국립민속박물관 전문위원)/ 국악교육 부문 김승국(국악예고 교감)/ 고음반 부문 김종철(고음반연구가)/ 시조 부문 박종순(대한시우회 이사)/ 불교음악 부문 김능화(영산재 전수조교), 이상과 같이 매우 세분화 된 12분과 12명이다. 일반적인 인지도로는 부족할 수는 있으나 해당 분야 전문성으로서는 이의가 없다고 평되었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민속’의 강조와 무속, 불교음악, 고법, 아리랑과 같이 종목의 하위 장르를 포함시킨 점이다. 이는 2000년 들어 일기 시작한 문화예술계의 트랜드를 반영한 것이다. 이에 따라 위촉된 편집위원들은 100호부터 고정 코너 필진과 편집 자문역으로 참여하여 국악신문 전문화 안착에 기여했다. 이들의 전문성 발휘는 칼럼, 기획기사, 연재기사 집필, 자문역 등으로 참여했다. 100호를 기념하여 새롭게 마련된 기획물 중 대표적인 지면이 칼럼 <국악시론>이다. 이의 첫 집필은 양승종(1952년생) 박사가 맡았다. 필자인 양 박사는 ‘대체불가(代替不可) 무속학 박사’이다. 이 호칭은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대충의 전문가를 부르는 세속적인 호명이 아니다.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리처드 바우만 교수와 로저 저넬리 교수의 지도를 받아 박사학위를 받은 실제의 민속학과 인류학 박사학위자이다. 그리고 1960년대부터 무속춤을, 1970년대에는 황해도 출신 큰무당에게서 무속춤과 소놀이굿을, 이후 강령탈춤과 경기 무속춤 까지 속속들이 섭렵(涉獵)했다. 이렇게 실기를 체화하며 동시에 온나라 굿판을 다니며 보고서와 연구논문으로 학계에 기여했다. 이런 활동은 국내는 물론 해외 한국학계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이런 배경에서 ‘샤먼 학자로써 샤먼들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대변자’(미국아시아학회 로렐 켄달 회장)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 ‘샤먼들의 대변자’로의 호명은 세계샤먼학계에서도 대체불가 한 인물임을 인정한 것이다. 양 박사는 100호 특집 신설 코너 <국악시론>은 ‘국악을 통해 한국적 문화의 틀을 만들자’라는 칼럼이다. ‘국악은 다양한 장르를 아울러야 한다’라는 지론과 함께 국악신문에 대한 제안을 했다. 칼럼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 국악은 우리의 소리, 행위, 놀이, 의례, 그리고 신앙 등 이른바 한민족 전통문화의 총 집결체에서 표출되어진 역사의 산물이며 애국의 음률이다. 오늘날 까지도 한민족의 세계관은 국악이 바탕이 되는 가무악(歌舞樂)으로 펼쳐져 왔으며 그것은 우리 삶을 통해 입증되어 왔다.(중략) 국악의 미래는 우리들의 새로운 각오와 사고전환을 통한 ‘우리문화의 틀’을 짜는 데서만 찾을 수 있다.(중략) 국악신문은 사회교육적 기능을 발휘하고 그 역할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양 박사가 첫 필자로 참여한 <국악시론> 칼럼란은 고정란으로 자리 잡아 이어졌다. 이후 양 박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여 「국악신문」의 전문화에 기여하였다.(계속)
많이본뉴스
많이 본 뉴스
- 1토속민요의 힘, ‘일노래, 삶의 노래’
- 2공연예술로 하나가 되는 '더원아트코리아' 최재학 대표를 만나다
- 3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일노래, 삶의 노래' 오는 23일부터
- 4(34) <br> 노동은의 ‘잘못된 조건’ 둘, ‘교묘한 조작’
- 5유인촌 문체부 장관, '국제문화정책 추진전략' 발표
- 6'새 국악진흥법' 시행령·시행규칙 공청회 31일 개최
- 7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94)<br>북해도아리랑
- 8문화체육관광부, 지역 예술단체 22개 선정
- 9김연자 "노래 좋아 달려온 50년…88 폐막식 하늘 지금도 생각나"
- 10스페인의 꽃, '파두&플라멩코' 부산에서 만나다, 선착순 200명 예약